- 한국교육개발원(부연구위원, 연구팀장)
- 미국 피츠버그대 국제교육연구소 초빙연구원(풀브라이트 재단)
- 서울대학교 대학원 교육학과 박사과정(교육행정 전공)
말도 많은 고교평준화정책의 점진적 폐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대학수능시험에 즈음해 서울대 총장과 같은 책임 있는 사람들의 교육에 대한 한마디 한마디는 그대로 학부모들에게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난마처럼 얽혀버린 오늘의 교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내놓고 토론하여 그나마 조금 더 나은 방법을 찾는 것은 바람직한 일임에 분명하다. 그러므로 정운찬 총장의 제안에 대해서도 말꼬리를 잡아 비난하기보다는 건설적 비판에 입각한 대안의 제시가 더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그런 취지에서 필자는 고교입시를 부활하는 방안에 앞서 대학입시를 부활하는 방안이 더 먼저임을 주장하고자 한다.
현재의 입시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를 몇 가지 지적해보자. 첫째 내신성적의 의무반영비율은 일견 고등학교교육의 정상화와 강남8학군의 소위 일류고등학교 이외 재학생들에게 상대적인 교육기회 혜택을 제공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 듯 하나, 실제 상황은 그렇지 않다.
내신성적은 대부분의 학교에서 부풀려져서 심지어 7-80% 이상의 학생들이 수나 우 등급을 획득하고 있다. 학교선생님의 교육평가권은 사라져버렸으니 학생들이 학교선생님의 말을 들을 리가 없게 되었고 대학에서도 고등학교의 성적을 믿으려하지 않고 온갖 수를 동원하여 내신반영비율을 낮추고자 한다.
내신성적은 수학능력과는 거의 상관없이 고등학교간 나눠먹기 방법으로 변질되었고 종국에는 고등학교 교육의 파행을 초래할 것이다. 둘째 내신성적을 구성하는 요소의 하나인 수행평가 또한 교육평가의 타당성 제고라는 원래 목적과는 다르게 변질되었다.
우선 앞서의 내신에 의한 나눠먹기는 일견 강남8학군에 오지 못하는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부풀려진 내신성적과 파행적 수행평가는 오히려 가난한 영재들을 우울하게 할 뿐이다. 수행평가는 지필고사성적을 메꾸어 내신성적을 부풀리는 데 동원된다.
지필고사는 아무리 쉽게 낸다고 해도 학생간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으므로 수행평가를 통해 부족한 점수를 메꾸는 것이다. 더구나 부유층의 자녀들일수록 수행평가점수를 획득하는 데는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결국 시험이 어려우면 부잣집 평재들을 혹시 따돌릴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진 가난한 영재들에게 부풀려진 내신과 수행평가는 구조적 불평등의 굴레인 셈이다. 이제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셋째 대학수능시험을 쉽게 내고 대학본고사를 폐지하면 사교육비가 줄어든다는 것도 거의 거짓말에 가깝다. 특히나 가난한 영재들에게 그것은 정말 거짓말이다. 이들은 시험이 어렵건 말건 어차피 학교 외에는 기대어 볼 데가 없다. 교육학 이론에 따르면 학교와 선생님의 영향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결코 학생의 능력과 노력을 넘는 것은 아니다.
학교와 선생님의 학생을 도울 뿐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입시제도는 학교와 사교육의 영향력을 과도하게 인정하고 있다고 본다. 사교육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서는 시험을 쉽게 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렵게 내야 한다.
완벽한 방법은 없다. 차선의 방법이 있을 뿐인데, 차선의 방법이라도 찾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대학입시제도는 교육제도인만큼 교육 이론과 원칙에 입각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원칙을 잊으면 안된다. 즉, 대학입시는 대학수학능력이 있는 학생을 선발하는 제도이지 대학입학이라는 이권을 나누어주는 장치가 아니라는 점이다.
대학입시제도가 그와 같은 본질을 잃고 후자와 같은 나눠먹기 장치로 누덕누덕해지는 바람에 사교육이 성행하고 고교교육이 파행하고 사회적 위화감이 생기게 된 것이다. 대학은 대학 고유의 방식으로 학생을 선발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대학은 수능시험만으로, 어떤 대학은 내신만으로, 또 어떤 대학은 본고사로, 또 어떤 대학은 고교졸업자격만으로도 학생을 선발할 수 있을 것이며, 그러한 판단 근거는 순전히 그 대학이 나름대로 설정하고 있는 수학능력기준일 뿐이다. 서울대학교 총장은 고교평준화 정책의 폐지여부를 논해야 할 것이 아니라 정부와 다른 대학의 눈치를 보지말고 독자적인 입시제도를 고안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