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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란 무엇인가
권력의 자유는 피지배자의 부자유 확대시킨다
4. 권력 집단, 자유인 집단

자유는 본질적으로 욕망이다. 유교의 수신(修身), 신독(愼獨)과 스토아 학파의 금욕은 이와는 반대 방향으로 자유에 접근한다. 욕망을 버리는 데서 자유 추구의 출발점을 삼으려고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구원 종교도 욕망을 버리는 데서 인류 구원의 단서를 얻는다. 그러나 사람들이 살아 온 현실 역사는 그렇지 않다. 욕망의 분출과 잠복이 큰 사이클로 반복한 것이 인간의 역사다.

기독교는 진리가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고 설교하지만 세속은 권력이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권력이 있는 자만이 자유롭다. 권력욕이라는 단어가 있기는 하지만 권력욕이 성취되어 권력을 잡게 되면 다른 욕망은 그 권력을 가지고 성취할 수 있게 된다.

권력은 자유를 실현하고 욕망을 성취하는데 필요한 위치 에너지다. 권력의 높이가 높으면 높을수록 더 큰 에너지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권력 없이는 자유는 없다. 더 큰 권력은 더 큰 자유를 갖게 해 준다. 권력으로서의 자유에는 몇 가지 생각해 볼 성질이 있다. 하나는 그것의 획득과 유지의 문제고 다른 하나는 그 집단성의 문제다.

권력의 위치 에너지적 성격은 권력이란 것은 마치 지구 표면으로부터의 높이처럼 본래 존재하며 추상적임을 뜻한다. 왕(王)이라는 자리, 귀족의 자리, 서민의 자리가 본래 있는 것이라고 가정하자. 그러면 구체적으로 누가 왕이 될지 결정되지 않고 있거나 지금 차지하고 있는 사람의 자리가 누군가로부터 도전 받고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자리는 있는 것이다.

그 자리가 있으면 누군가가 구체적으로 그 권력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혁명이라 하더라도 이 높이를 없애는 혁명이 아닌 한 그 어떤 혁명도 피지배층에게 자유를 가져 오지는 못할 것이다. 역성혁명 따위는 물론 부르주아혁명도, 심지어 계급혁명도 이 권력의 높이를 그대로 두고 있었다면 높이가 낮이에 가하는 속박과 강제를 없애지는 못한다.

소련의 공산 혁명이 계급은 없앨 수 있었지만 인민에 대한 속박과 강제는 없앨 수 없었던 것은 이런 이유다. 볼쉐비키가 평등은 말했지만 결코 권력의 포기를 말하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다. 자유는 권력의 평등이지만 그들은 권력의 평등 대신에 계급의 평등만을 높이 쳐들었던 것이다.

권력의 위치 즉 높이는 곧 권력의 위계 제도다. 제도가 없으면 위치적 권력은 있을 수가 없다. 마치 높이가 없으면 위치 에너지가 있을 수 없듯이 말이다. 위계 제도를 지키고, 구체적으로는 자신의 권력 위계를 지키거나 상승시키기 위하여 능력 있는 사람은 서로 집단화한다. 여기서 능력이라는 것은 물리학의 운동 에너지에 해당한다. 완력, 지력, 설득력, 지도력 등이 능력에 해당한다. 집단화는 단결된 힘의 효과를 얻는다. 집단화의 원칙은 권력 획득이나 유지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최소 집단이다. 권력의 높이가 높으면 높을 수록 그것을 쥐는 적정 인원의 숫자는 적어진다.

능력은 이미 어느 정도는 권력이다. 능력이 위치적 권력이나 권력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면 그 권력은 안정화된다. 권력은 항상 도전되고 있으므로 감시망을 펼친다. 다시 말하면 권력자의 자유는 피지배자의 부자유를 확대시킨다. 어떤 집단의 자유는 다른 집단의 부자유 위에서 성립하게된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자유는 자유민에 한하였으며 자유민의 존재는 부자유민 집단의 존재를 전제로 하였다.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권력과 자유를 논하고 있다. 그는 18세기와 19세기에 걸쳐 살았던 영국 사람 제레미 벤담이 설계한 일망 감시 시설인 판옵티콘이 근대적 권력의 규율적 본질을 설명하고 있다고 보았다. 판옵티콘의 온전한 이름은 '판옵티콘--또는 어떤 부류이든 감시되어야 할 사람들을 수용하는 사회 시설, 특히 감화원, 감옥, 공장, 작업장, 구빈원, 제작소, 정신병원, 검역소, 병원, 학교 등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구성원리에 대한 구상을 포함하는 감시 건물: 원리에 적합한 계획 첨부'다. 푸코에 의하면 벤담이 근대 권력이 신체에 대한 지배를 그 주요한 목적으로, 또 감시를 그 기초 기술로 삼고 있음을 통찰해 냈다는 것이다.

이에 관하여 지그문트 바우만은 그의 저서 <자유>에서 푸코가 판옵티콘에 대하여 세 가지를 간과 했다고 주장한다. 첫째로 간과한 것은 판옵티콘이 자유와 부자유, 자율적 행위와 강제된 행위의 대립이란 점, 둘째는 이 대립이 단순히 두 이념화된 유형 사이의 논리적 구별이 아니라 한 사회 구조 내부에 있는 상호 규정적인 위치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라는 점, 셋째로 이 감시는 전문적 지식과 그 지식에 따른 행위 능력을 갖춘 숙련된 사람들에 의하여 입안되고 실시된다는 점이라고 했다.

푸코가 사회 현상을 권력이라는 화두로 돈오(頓悟)한 것을 지나서 바우만은 이 권력이 어떤 사회에서나 위치적으로 존재하고, 권력자에 의하여 설계 실시되는 감시체계에 의하여 부자유 집단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강조한다.

한국대학신문 | 입력 : 03-12-06 오후 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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