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이 엄청난 죄임은 확실하다. 그러나 많은 대학과 저널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주 물리학계에서 수면위로 떠오른 사건 하나는 현대에도 과학의 자긍심을 위협하는 것들이 여전히 존재함을 드러낸다.
동료 과학자들을 배신하기로 마음먹은 과학자는 이를 위해 수많은 전략을 세울 수 있다. 그 중 위험부담이 적고 보상도 적은 외국 저널지의 논문을 표절하는 수법을 사용한 한 물리학자의 행각이 이번 주 화제를 불러모았다. 이 사기꾼이 참고문헌 몇 개 적혀있지 않은 반쪽짜리 논문을 썼다치면, 이 사람의 동료들이 보인 반응 또한 의문을 살 만하다.
박 융은 물론 장 핸드릭 스콘(Jan Hendrik Schön) 같은 인물은 아니다. 스콘은 뉴저지 무레이 힐의 그 유명한 벨 연구소에서의 주목받는 젊은 물리학자였다. 2002년 5월경에 스콘이 발표한 논문이 의혹에 휩쌓였을 때 그의 고용주들은 이를 즉시 언론에 공개하고 조사에 착수했으며, 독자들에게 곧바로 사실을 알릴 수 있도록 저널지에도 시시각각 상황을 보고했다. 스콘은 25편의 논문에서 데이터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고, 물리학자들은 이런 논문상의 사기나 오류의 대처 방안을 강구해야 할 시점임을 깨달았다.
그러나 박씨의 표절에 대한 대처법은 그리 현명하지 못했다. 박씨가 대전의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과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서 방문 과학자로 있던 1995년과 2002년 사이 그는 무려 80편의 재료공학 논문을 발표했었다. 이중 적어도 여덟편의 논문이 표절된 것이며, 대부분은 러시아어로 된 논문의 복사본에 불과하다. 지난 2002년 4월 이러한 사실이 밝혀지자 박씨는 캠브리지를 떠났고 그 후 그의 행각은 묘연하다.
박씨의 분야인 전기재료공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 있어서는 불행한 일이지만 캠브리지에 있던 박씨의 동료들은 발견된 표절 내용을 저널지에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또한 카이스트로부터 연락을 받은 몇몇 저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 결과 표절로 밝혀진 논문 중 적어도 네 편 정도는 아직도 온라인상으로 열람이 가능한 채 방치돼 있다.
네 편의 표절 논문들은 그리 주목 받지도 못했을 뿐더러 표절 시비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 사건의 관련 인물들은 분명 이런 안이한 태도를 가졌음직하다. 네이처지가 연락한 저널지와 과학자들은 하나같이 표절을 뿌리뽑을 방안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도 실천 의지는 박약함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물리학계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는 '나 몰라라’식의 책임회피적 태도를 그대로 보여줬다.
이런 태도를 갖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왜냐하면 아주 간단한 대처법으로 박씨와 같은 표절 문제를 근절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솔리드 스테이트 커뮤니케이션(Solid State Communication)’이라는 저널은 박씨가 표절한 것으로 보이는 논문을 실은 적이 있다. 이 저널은 그들의 웹 페이지에 있는 박씨의 논문이 표절임을 덧붙이면서 독자들에게 논문의 원본을 제시하였고 잡지의 인쇄판에도 이 같은 사실을 알렸다. 이와 같은 노력으로 이 저널지는 원 작가의 저작권을 지켜줬을 뿐만 아니라 박씨의 혐의를 확고히 드러냈다.
대학과 연구소 또한 표절에 대해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박씨는 방문 과학자로서 캠브리지로부터 월급을 지급받지는 않았으나 대학의 실험실에서 근무한 것은 확실하며 대학의 이름으로 논문을 펴냈다. 그러므로 대학도 당연히 박씨가 그곳에 머무는 동안 발표한 40여 편의 논문을 조사할 책임이 있으며 조사 결과를 저널과 과학자들에게 밝힐 의무가 있다.
이를 무시한 결과 원본 논문의 과학자들의 저작권은 심각하게 침해 당했으며, 박씨가 또 다른 범죄를 저지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부정행위와 책임감의 부재가 언론에 공개되었을 때는 과학에 대한 대중의 믿음이 깨어지게 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됐다.
박씨의 표절 행각은 스콘사건처럼 물리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아예 덮어둘 수는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