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전의 역사에서도 오늘날의 대학에 해당하는 최고 교육기관이 있었던 사실을 보면 우리 민족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교육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있었고, 최고 교육기관을 둘만큼 교육의 수월성을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의 대학은 그렇게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5000년 역사와 더불어 존재해왔던 것이다.
광복 후 우리 대학은 근대적 모습의 대학으로 태어나서 팽창을 거듭하며 발전을 해왔다. 지금은 2백개가 넘는 대학이 전국에 산재해 있다. 그런 대학들이 지금 위기라고 한다. 그래서 위기의 대학을 살려야 한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그런데 대학의 위기라는 것이 요즘 들어 새삼 대두된 문제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요즘만의 문제가 아니고 그동안 늘 그런 말을 들어왔던 것 같다. 필자가 대학을 다녔던 시절에도 대학이 위기라는 말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대학은 30-40년 전이나 지금이나 계속 위기를 맞으면서도 살아 있으니 생존력이 대단하기도 하고 그 위기를 용케도 잘 버텨온 셈이다.
광복 직후에 근대적 개념의 정규 대학이라고는 경성대학(서울대 전신) 하나뿐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지금의 우리나라 대학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엄청난 발전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시골의 면 소재지에도 대학이 들어서서 고등학교 졸업자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쉽게 대학에 갈 수 있을 정도가 되었으니 내용이야 어찌됐건 대학은 실로 엄청난 발전을 한 것이고 이것만 두고 보면 우리나라 대학들은 그동안은 위기를 정말 잘 극복했던 모양새이다.
요즘에는 상상하기가 어렵겠지만 불과 40년 전만 해도 1개 면(面)에 1개 중학교와 1개 초등학교, 1군(郡)에 1개 고등학교, 각 도에 1개 국립대학이 있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 때는 대학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았고, 학사학위만 있어도 최고 지성인이었고 사회지도층이었다.
6·25 전쟁 후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생겨난 사립대학들은 대학의 상징인 상아탑(象牙塔)이 되기보다는 소 팔아 자식 대학 등록금을 대느라 시골 부모의 허리가 휘어지는 바람에 우골탑(牛骨塔)이라는 별칭으로 불려 지기도 했지만 그런 곡절을 겪으면서도 우리 대학들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왔고,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돋움한 곳도 몇몇 있게 됐다.
그런 발전을 거듭해왔던 대학들이 이제는 서울권의 대학을 빼고는 입학 학생이 모자라는 수요와 공급의 역전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자식에 대한 교육열이 남달랐던 우리들 부모 때문에 대학 교육을 소화해낼 능력 있건 없건 자식을 무조건 대학에 보내자는 학부모의 요구와 표를 의식한 정치권의 선심성 정책에 밀려 대학 설립 허가를 남발하는 바람에 이제는 대학 입학정원이 고등학교 졸업정원 보다 많아지게 된 것이다.
대학의 난립으로 대학의 격은 당연히 떨어졌고, 대학은 전문 인력을 키우기 보다는 대학을 나왔다는 자기만족과 대외 간판용으로 더 많이 활용되는 장식품 정도로 전락한 것이다. 일부 그렇지 않은 대학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동안의 대학의 위기가 막연하게 생각했던 위기였다면 진짜 대학의 위기는 이제부터 시작되려는 것이다. 학생 수를 채우지 못하여 문을 닫을 대학이 실제로 나오기 시작하면 피부로 느끼게 되는 위기가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졸업생 수보다 많아진 대학 정원 탓에 학생이 모자라니 정원 채우기가 급하고, 정원을 채우자니 수단 안 가리고 학생을 채우는 무리수를 쓰게 되고, 다른 대학으로 빠져나가려는 학생들을 붙잡아두기 위해 또 다른 무리수를 쓰게 되고, 그러다 보니 학교 재정에 문제가 생기고, 재정에 문제가 생기다 보니 대학 운영을 경제 논리로만 하게 되고, 대학 운영을 경제 논리로 하다 보니 교육 부실을 초래하게 되고, 부실 교육은 다시 학생 지원감소로 이어지고, 학생 지원이 감소되어 교수는 강의보다는 일선 고등학교 교무실로 찾아가서 교사들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학생 모집을 해야 하거나 강의를 그만 두어야 하는 일이 생기게 되고, 그런 교수 자리에 유능한 인재가 올 리 없으니 대학 교육은 더 큰 부실을 초래하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지게 되어 대학은 위기의 현상을 훨씬 넘는 파멸의 지경에 이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 대학은 내부에서 오는 위기의 늪에서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위기의 먹구름이 바로 코앞까지 와 있는데도 설마 대학이 문을 닫기야 할까하는 요행 심에 기대는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지금 대학의 위기는 내부에서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