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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끝없는 식자층의 몰락
김재영 충남대 교수 / 본지 전문위원
임수경씨 아들의 죽음을 보도한 인터넷 기사에 ‘악의적인 댓글’(악플)을 올린 누리꾼들이 형사 처벌되었다. 놀라운 사실은 악플러들의 면면이다. 검찰이 고발한 25명의 악플러 중 21명이 불혹을 넘긴 중년이었다. 초딩, 중딩 쯤의 철부지들이 사이버공간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주범으로 미루어 짐작했을 대다수 사람들에게 ‘중년배 악플러’의 등장은 의외의 사건이다.

충격적인 사실은 이들 악플러가 대학교수를 비롯해 금융기관의 중견간부, 대기업 회사원, 전직 공무원 등 주로 식자층이라는 데 있다. 이들은 모름지기 사이버공간에서 무책임한 행동을 저지르고 억제되지 않은 표현을 남발하며, 심지어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위협을 가하는 현상에 짐짓 근엄한 자태로 ‘말세’를 탓할 부류 아닌가.

식자층의 이중성은 어제오늘, 그리고 우리나라의 현상만이 아니다. 이들의 행태를 비꼴 때마다 어김없이 거론되는 인물들이 있다. 맑스, 루소, 톨스토이, 러셀, 헤밍웨이, 사르트르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지성인들이 바로 그들이다.

맑스는 노동자 착취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항했지만 정작 자신의 집에서는 하녀를 부려먹은 것으로 유명하다. 교육 문제에 천착한 루소는 자신의 다섯 아이들을 고아원에 버렸다. 톨스토이는 불륜을 사회악이라고 말하면서 사창가를 제집 드나들듯 했다. 합리적 토론문화를 주창한 러셀은 자신과 의견을 달리 하는 사람들에 대한 뒷담화를 즐겼다. 소설가 헤밍웨이는 진실이 작가의 최고 미덕이라면서 실생활에서는 거짓말을 아끼지 않았다. 행동하는 지성의 상징인 사르트르는 또 어떤가. 그는 여성을 인간으로조차 인정하지 않은 전형적인 남성 우월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물론 이들이 지식인 일반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중년의 고학력 중산층이 저질 댓글문화를 선도하는 주류도 아니다. 한 명의 악플러 대학교수로 인해 교수 집단이 도매급으로 매도되는 것도 온당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높은 사회적 신분을 지닌 사람들에게 기대하기 마련인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이제 루비콘강을 건너간 듯하다. 불발로 그쳤으나 국민 다수가 찬성하는 사학법 개정에 학생들을 볼모로 극한 반발에 나선 국공립학교 교장들.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이기는 하지만 과학자로서 최고의 영예를 누리던 황우석 교수가 전 세계를 상대로 내뱉었던 새빨간 거짓말들. 올 겨울 동안에만 우리는 이렇게 굵직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몰락을 지켜보아야 했다.

여기에 자신의 정체를 숨길 수 있는 익명성에 기대어 타인의 고통을 희롱한 악플 식자층까지 가세했다. 보도에 따르면, 임수경씨는 아들의 체취가 가시지 않은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영남의 한 사찰에 은둔한 채 슬픔을 삭이고 있다고 한다. 사고로 아들을 잃은 데 위안은커녕 자신을 아직도 ‘악질 빨갱이’로 묘사하고 그 아들의 죽음마저 조롱하는 악플에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입었을 터다.

이 겨울의 끝자락이 곧 지나면 대학은 새내기들로 북적거릴 것이다. 기업과 정부부처에도 부푼 꿈을 간직한 초년병들로 새로운 활력이 넘칠 것이다. 누가 이들에게 지식이 아닌 ‘지행합일’의 참뜻을 어떻게 전해줄지 걱정이 앞선다.

한국대학신문 | 입력 : 06-02-07 오전 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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