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대학개혁의 화두로 한때는 집중과 선택이 날을 세웠었다. 두 단어가 요즘은 시들시들한 형편이다. 황우석 교수팀의 논문조작 파동 때문에 그것은 그렇게 시들어 버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들을 집중지원하던 이른바 ‘황금박쥐’ 사단들 마저도 잠적해버렸다. 특정학문에 대한 집중적인 지원이 정권에 끼친 피해를 무시할수 없었던 모양이다.국민들의 망각속도로 계산해보면, 이때쯤 대학개혁의 화두를 또다시 만들어 내야 할 법하다. 정치권력의 속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한때 가속도가 붙었던 대학의 평준화라는 화두도 이제는 정치적 아젠다에서 사라졌다. 교육의 양극화 해소라는 정치적 화두로 꺼져가는 불꽃을 되 살려 보고 싶은 마음이 없을리 없다. 권력의 시계소리가 멈추지를 않고 있기에 저들도 망설임의 미학을 아는 모양들이다. 초를 읽으면서 시간과 정력을 아끼라는 소리없는 아우성이 저들을 채찍질 하기때문이다.
대학개혁의 마지막 화두가 남아있다면 그것은 국제화와 산학협동과 같은 구호들이다. 외국대학의 인사들이 한국 땅을 밟으면 한 두마디씩 조언을 해주는 단어가 바로 그것들이라 시의성마저 살아있다. 국제화와 산학협력이 없으면 살아남기조차 힘들다는 논리가 국민적인 설득력도 갖는다. 대학은 세속과 현실과 거리를 두면서도 결국은 세속과 현실이 원하는 것을 줘야 한다는 명분에 힘이 실린다. 대학 스스로 불량 졸업생들을 ‘애프터 서비스“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었다. 대학 스스로 기업현장의 실정에 맞도록 맞춤형 교육과정으로 대학의 교육과정을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거나, 외국대학과 공동학위제를 추진해서 학생들에게 국제감각을 길러주어야 한다는 요구들도 나름대로 설득력을 지녔었다.
교실현장에서 영어강의도 늘었고, 더 앞서가는 대학들은 대학원생들의 졸업논문을 아예 영어로 쓰도록 만들어 놓기도 했다. 학생들에게 책임지는 대학이라면 그들의 욕구에 부응하도록 학생들에게 국내외 기업에 인턴십을 시키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취업·창업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에게는 그들 스스로 국제적 고급 인력이 될 수 있도록 대학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어야 한다. 그것이 학생들에 대한 대학교육의 책무성이다. 한국대학들은 그동안 나름대로 혼신을 다해 대학개혁에 박차를 가했던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대학을 상아탑이라고 부르며 그렇게 안주하는 대학은 한 곳도 없다. 학생들의 외국어 실력이나 취업준비 능력들은 매년 달라지고 있다. 저들은 80년대 대졸생들이자 지금의 정치적 실세들인 386세대로부터는 발견할 수 없었던 새로운 능력들로 갖추어진 유능한 인재들이다.
그런데도 대학을 나선 저들에게는 지금 갈 곳이 없다. 10명중 7명이 거리를 방황중이다. 저들은 실력이 없어서 취업의 길이 막혀버린 것이 아니다. 일자리가 없어서이다. 그들의 정치적 역량으로는 더 이상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 대신 저들이 신음하고 있다. 권력이 저들에게 죄를 짓고 있는 것이라고 아무리 소리질러 봐도,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메아리 치기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