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조 이후 우리나라 교육은 서당(書堂)과 서원(書院), 향교(鄕校)와 사부학당(四部學堂), 그리고 성균관(成均館)이 담당하였다. 흔히 ‘글방’이라 부르는 서당은 초등과정을 가르치는 곳인데 오늘날로 말하자면 일종의 그룹 개인지도 장소 같은 것에 해당한다.
서원은 지방유림들에 의해서 세워진 제의(祭儀)와 교육을 겸한 교육도장(敎育道場)으로 중등과정을 교육하는 장소였다. 당시 유림들은 각 지방마다 사우(祠宇)와 서원(書院)을 세웠는데 단순히 제의만을 행하는 장소가 사우라면 제의와 강학(講學)을 아울러 행하는 장소가 서원이었던 것이다.
향교는 각 지역에 설립된 관학(官學)기관으로 이곳에는 공자(孔子)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문선왕묘(文宣王廟:文廟)를 중심으로 그 아래 유학(儒學)을 강학(講學)하는 명륜당(明倫堂)을 세우고 중등과정을 교육했다.
향교가 지방 관학기관이었다면 중앙에는 이에 해당하는 사부학당(四部學堂)이 있었다. 세칭 학당이라 하는 이 교육기관은 중앙의 각 부에 설치하여 향교와 동일한 제의적 기능과 강학적 기능을 수행했다.
중앙이나 지방, 관학과 사학을 막론하고 이처럼 당시의 중등교육기관은 한결같이 제의적 기능과 강학적 기능을 함께 수행해 나갔으니 관립 대학기관인 성균관(成均館)이야 말해 무엇하랴?
우리나라 옛 대학인 성균관은 고려 충선왕 때 ‘국학(國學)을 성균관으로 개명한 데에서 시작되었다. 공민왕 때에는 ’국자감(國子監)‘이라 부르다가 곧 성균관으로 복귀되었는데 1894년 갑오개혁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최고 교육기관이었다.
1398년(태조 7년) 이태조는 숭교방(崇敎坊-明倫堂)에 성균관 건물을 준공하고 고려 제도대로 공자를 모신 문묘(文廟), 유학(儒學)을 강의하는 명륜당(明倫堂), 유생들이 거처하는 재(齋)를 두었으며, 태종은 땅(學田)과 노비를 지급하고 친히 문묘에서 제사지내고 왕세자의 입학을 명하니 이후 이것은 상례가 되었다. 이처럼 모든 교육기관에는 반드시 문묘가 자리한 전(殿)이 있고 구 주위에 유학을 강론하는 강당(講堂)이 있어 전과 당이 있는 교육의 도장(道場)이라는 뜻에서 학문을 연마하는 곳을 전당이라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