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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권 벗삼아 홀로 떠나자
보문사ㆍ운주사ㆍ부석사 등 '인생설계' 명소
세상사 훌훌 털어버리고 잠시 잠종비적, 종적을 아예 감춰버리고 싶다면, 대학가가 가장 시끌벅적한 5월, 지금 떠나라. 캠퍼스를 비워라.

소리 없이 사방을 에워싼 초록의 향연, 전설 속으로 절로 빠져들게끔하는 무수한 탑신의 행렬, 풍경소리마저 멈춰버린 아득한 정적. 여린 아침 햇살이 창호지 문을 두드릴 때 눈 비비고 일어나 청정한 기운을 마주할 수 있는, 그런 곳.

“천천히 씹어서 공손히 먹어라. 봄에서 한여름 가을까지 그 여러 날 비바람 땡볕으로 익어온 쌀 아닌가.” 전남 보성 대원사 공양간에 붙어있는 글귀다. ‘오래 걸려 느리게 홀로 가야 하는’ 길의 가르침을 원한다면, 홀로 떠나라.

그리고 행장을 꾸림에, 책 한 권 정도는 넣고 길을 나서라. 인간의 가장 깊숙한 곳을 서럽게 울려주는 예술장르이자 문학이 가 닿을 수 있는 아름다움의 절정인, ‘시’가 됐든 ‘소설’이 됐든 그 어떤 것이든 간에 책 한 권을 손에 쥐고 말이다.

* 강화 보문사

강화도는 섬이라기보다는 아예 뭍이 돼버린지 오래다. 반면 강화의 허리춤에 살포시 자리한 석모도는 아직까지는 갯벌과 바다와 산이 한 몸으로 어우러진, 섬 풍채 본래의 모습을 간직한 곳이다. 강화 외포리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10분 가량 들어가면 석모도에 발을 딛을 수 있다.

본래 석모도는 낙가산 보문사의 마애석불로 유명한 곳이다. 보문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회정대사가 창건한 절로서, 금산 보리암ㆍ낙산사 홍련암과 더불어 예로부터 우리나라 3대 관음도량으로 손꼽히던 곳이다.

절 마당이나 마애불 아래에서는 어렵지 않게 서해 낙조의 장관을 목도할 수 있다. 서해의 너른 바다를 이불 삼아, 그 속으로 몸을 숨기려는 저녁 해를 바라볼 양치면, 가슴이 붉은 딱새 마냥 저도 모르게 온 몸이 붉게 물들 지경이다. 사찰 뒤 정상에 마련된 낙조대의 노을 또한 가히 일품인데 이 곳에 오르려면 계단을 4백 여 개나 올라야 된다.

가까운 곳에 갯벌이 수십만 평에 달하는 민머루해수욕장이 위치해 조개, 소라 등을 잡는 가족 단위 여행객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때문에 석모도 보문사 코스는 여럿이 찾기에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 화순 운주사

신라말 도선국사가 창건한 절이다. 옛 문헌에 따르면, 도고산 서른 여섯 봉우리 가운데 가장 높은 봉우리 절정 아래에 위치했다고 한다. 구름이 늘 절 앞에 머물고 있기에 구름이 머무는 절, 곧 운주사(雲住寺)라는 이름을 얻은 것이다.

조선시대 대북파의 영수로 영의정에 두 번씩이나 오른 이산해는 이 곳에서의 하룻밤을 두고 후일 신선들이 산다는 요대(瑤臺)에서 유하였노라 적었다. 아울러 도고산 달빛 완상은 실로 하늘이 베풀어 준 것이요, 계획하거나 약속해서 될 일이 아니다라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이런 전설도 전해진다. 도선국사가 우리나라 지형을 배로 보고 호남땅이 산이 적어 배가 한쪽으로 기울 것을 염려해 도력으로 천불천탑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대웅전 오른 쪽으로 2백 미터쯤 오르면 길이 12미터, 너비 10미터의 거대한 와불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불상이 국사가 세우려고 한 마지막 천불이라는 것이다.

실제 지금의 운주사는 6ㆍ25 이후 터만 남은 것을 중창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운주사 솔숲에 뜨는 달은 가히 선경으로 손꼽힌다. 달빛 아래 두 사람 마음은 실로 두 사람만이 안다(月下情人 人事兩人知)고 했던가. 혼자서는 절대 가서는 안 되는 곳이다. 달빛 때문이다. 애간장을 끊게 만든다.

* 김제 망해사

이곳에서는 절이름이 가르치는 바 그대로 바다만 바라볼 일이다. 낙서전 앞에 서면 저 멀리 고군산열도가 그림처럼 그 풍채를 풀어놓고, 은빛 바다 위에는 작은 배들이 점점이 수를 놓는다. 뒷산 전망대에서는, 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저녁 노을과 이로 인해 다시 가슴 저리는 자기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그 애잔함이 감당키 힘들 지경이기에 옛 선인들이 당초 바다만 바라보라 이른 것이다.

* 남해 금산 보리암

조선 태조 이성계가 자신이 왕위에 오르면 산을 비단으로 감싸주겠다며 백일기도를 올린 곳이 바로 지금의 금산이다. 보리암은 비좁고 크게 살필 것은 없다. 다만 보리암에서 바라본 금산과 남해의 풍광은 그야말로 천하절경에 다름 아니다. 보리암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 보라. 그 어느 곳에서도 보기 힘든 일출과 일몰의 신비한 자태를 목도할 터이니.

* 영주 부석사

혜곡 최순우 선생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에서는 한국미의 표상으로 이곳을 가리켰다. 볼록한 배흘림기둥과 사뿐히 고개를 든 지붕 추녀의 곡선, 게다가 절을 감싸듯, 그림보다 더 곱게 펼쳐진 능선. 자연과 떼내어 분별키 어려운 가람의 참 모습이다. 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 1킬로미터에 걸쳐 이어진 이 길 역시 ‘조선땅 최고의 명상로’라는 평.

한국대학신문 | 입력 : 04-05-10 오전 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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