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들이 제기한 탄핵 사유의 정당성은 헌법재판소가 판단할 일이기에 이에 대한 시비는 가릴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탄핵의 한 축에 있으면서 스스로의 행위는 정당화하고 국민적 실망이나 분노는 외면 또는 호도한 의원들의 행태는 결코 간과하기 어렵다. 이러한 행위는 책임정치와 거리가 멀고 자칫 민주주의의 본질을 왜곡할 수 있어서 어쩌면 탄핵사유의 적법성을 따지는 헌재의 결정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민주 사회에서 법을 준수하는 일은 모든 시민의 책무이다. 따라서 탄핵이던 법률의 제정이던 의원들이 적법 절차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의원들이 법적 요건을 충족했다 해서, 이들의 행동이 모두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의원들의 실질적 존재 근거는 법적 절차를 준수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기관으로서 대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사실, 탄핵안을 가결한 의원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대의민주주의란 제도를 표방하기도 하였다. 국민이 선출한 대표이기에 위법성이 없는 한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그럴 듯한 논리이나, 이는 대의민주주의의 외연을 보고 본질을 가리는 자기방어적 행태에 지나지 않는다.
대의민주주의에서 의원들은 국민을 ‘위하여’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 수탁자(trustees)로서 행동을 할 뿐 아니라 국민의 뜻을 수렴하여 국정에 반영하는 대표자(delegates)로서의 역할도 수행한다. 이 두 가지 역할은 의원들의 이념적 성향에 따라 다소 비중이 달라질 수 있으나, 어느 경우에건 국민 의사를 존중해야 하는 당위적 의무는 저 버릴 수가 없다. 대통령이건 의원이건 모두가 국민에 의해 선출된 공직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탄핵을 지지한 의원들은 이 가운데 신탁자로서의 역할만 강조하고 이 것이 마치 대의민주주의의 전부인 양 치부하고 있다.
불행이도 현재 다수의 국민들은 의원들이 내 세우는 신탁의 논리마저도 인정치 않는 듯하다. 탄핵이 국민을 위해 이루어졌다기보다 의원들의 정치적 이익이나 당리당략에 따라 이루어 졌다고 보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원들은 이러한 인식이 곧 국론분열로 이어진다 하고 다시 한 번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활용코자 한다.
현재 국민들이 탄핵을 바라보는 시각은 국론 분열이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런 사회적 현상의 하나이다. 어느 사회, 어느 시대를 가던 국민이 중요한 국가적 과제(문제)를 놓고 통일된 견해를 보인 적이 있던가?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국민이 ‘어떤’ 견해를 갖느냐는 것이고, 따라서 우리는 다수결이란 제도를 만들어 과반수를 기준으로 어느 한 편의 의사나 결정을 존중하는 관례를 유지하여 왔다. 그런데 70%가 넘는 국민이 탄핵의 부당성을 주장하는데도, 이를 국론의 분열이라 하니 이는 사회적 현상의 본질과 통계학적 의미를 호도하는 소아적 억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탄핵사건을 계기로 우리는 국민의 대표인 의원들이 다음과 같은 질문에 해답을 찾는 엄격한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왜 의원들은 자신들의 다수 투표는 주장하면서, 국민들의 다수 의사는 외면코자 하는가? 왜 의원들은 자신들의 뜻이 곧 국민의 뜻이라는 선험적 추론을 하는가? 왜 오늘날 대의민주주의를 도입한 여러 국가들이 국민소환이란 통제 메커니즘을 운용하고 있는가? 왜 사회계약론자들이 정부 등 국가 권력기관이 국민 이익이 아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행동할 때 계약 파기와 함께 이들 기관을 전복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오늘의 대한민국 국민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만큼 우매하지 않다는 것도 생각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