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자연의 이치에서 한국의 대학은 교훈을 얻어야 한다. 우리나라 대학에서 신임교수를 선발할 때 우선 기준이 되는 것이 일반적으로 동일한 대학 및 대학원에서 학부, 석사, 박사과정을 같은 분야로 공부하였는가, 혹은 동일 전공으로 학사 및 석사학위를 획득하고, 박사는 동일분야를 외국대학, 특히 미국대학에서 취득하였는가 이다. 즉 이질적인 학교나 전공의 접목보다는 동질적인 동종교배를 선호한다는 말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학문의 근친상간”이라 꼬집어 표현하기도 한다.
‘학문의 동종교배’는 한 가지 학문분야를 일관성 있게 공부함으로써 깊이를 더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논리를 펼칠 수 있지만 학문에 더하여 ‘학벌의 동종교배’가 이루어지면 스승이나 선배의 그늘에 가려 새로운 학설이나 학문분야를 개척하기가 어렵게 된다. 특히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라는 유교적 가치관에 깊이 젖어 있는 한국인으로서는 스승이나 선배의 학설에 이론(異論)을 제기하거나 반론을 유발하는 것은 한국의 전통적인 윤리관에 반(反)하는 일로 간주되고 있다.
이러한 전통적인 유교적 가치관은 반유교적인 온정주의로 포장되어 ‘밀어주고 끌어주는’ 학연으로 혹은 인맥으로 이어지고 급기야는 정실주의로 둔갑하여 ‘가재는 게 편’ 아니면 ‘초록동색’(草綠同色)으로 작당(?)하여 ‘학벌의 요새’를 쌓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행이 고질화되어 우리의 대학은 동종교배의 악순환을 거듭하면서 학문적 열성유전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열성유전의 결함만을 이어받는 동종교배의 폐습에도 불구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박사학위는 외국대학에서 동일한 전공분야를 획득한 것을 우대한다는 점이다. 과연 박사과정만 이수하고 온 사람이 학문적으로 얼마나 깊이가 있으며 또한 그 나라 문화를 얼마나 이해하고 언어를 습득할 수 있겠는가 라는 폄하된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이러한 사람들은 국내의 연고에다 외국의 최고학위를 덧붙여 스스로 학문적 접목을 하였다고 우쭐거릴 줄 모르지만 동일 학문분야의 연장선상에서 학부나 석사과정에서 익혔던 이론을 외국어로 재탕하거나 이에 약간을 덧붙여 온 것과 무엇이 크게 다를 바가 있겠는가. 물론 개인의 재능과 역량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학문적 접목을 이렇듯 ‘눈 가리고 아웅식’으로 떠넘기면서 이질적인 학교 출신과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지닌 사람을 배척하는 풍토를 고착화하는 행태는 국가의 경쟁력 제고나 선진 대학으로의 발돋움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정으로 우리 대학의 질적 향상과 국가의 경쟁력 진작을 소망한다면 구미의 우수한 대학들이 그러하듯 동일 출신 학교간의 학문적 동종교배가 아닌 다른 학교 출신간의 학문적 접목을 과감히 시도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대학들은 동종교배로 얻을 수 있는 특권이나 이익만을 생각하기에 앞서 진정으로 대학과 학문의 발전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새 봄을 맞아 묵은 표피를 뚫고 싱그러운 새싹과 꽃을 피우는 과수(果樹)처럼 해 묵은 소아적인 이기심과 편파심을 미련 없이 내던져버리고 새로운 학문의 싹과 꽃을 피워 장차 알찬 결실을 맺게 되길 간곡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