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언론의 현주소는 100년만의 ‘3월 폭설’ 보도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수천억 원의 재산 피해를 입힌 재해는 있었지만 재해 ‘방송’은 보이지 않았다. 방송법 75조에 그 의무가 명시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폭설로 비닐하우스가 붕괴되고 축사도, 인삼밭도 붕괴됐다’는 식의 중계방송이 아니라 ‘폭설로 사고나 피해가 우려되니 이렇게 대비하라’는 식의 안내가 그렇게도 어려운 일이었을까.
언론의 발 빠른 보도가 전무했던 것은 아니다. 주요 방송사와 신문사들은 자사의 모스크바 특파원을 통해 그곳의 일사불란한 제설작업을 소개했다. 그런데 폭설이 다반사인 도시와 100년 만에 기록적인 폭설이 내린 우리의 현실을 비교해 어쩌자는 것인가. 폭설 대란 속에서도 사전 예방이나 대처 방법을 알리는 데는 인색하고 ‘눈’하면 떠오르는 도시의 제설 수준이나 본받으라고 타이르는 우리나라 언론은 민심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격이다. 이 점에서 언론이나 정치나 그 수준은 매한가지다.
분별력 없고 둔감한 언론이 사회적으로 중대한 사안을 제대로 짚을 리 만무하다. 교육부는 지난달에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발표했다. 주요 골자는 EBS의 위성/케이블 채널인 EBS 플러스1을 수능전문 채널로 전환해 중급 수준의 강의를 방송하고, 상/하급 수준의 강의는 인터넷으로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 수능문제가 출제된다.
언론에 그리 대단한 것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일방향적인 매체인 텔레비전을 통해서는 교육내용이 주입식으로 획일화될 우려가 있다거나 교육성과가 국가에 의한 줄 세우기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식의 백년대계를 헤아리는 보도까지 바라지 않는다. 그러느니 차라리 연목구어에 기대를 거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무료인 지상파방송이 아니라 유료인 케이블이나 위성방송 또는 컴퓨터와 통신망 가입 등 돈이 들기는 마찬가지인 인터넷을 통해서만 수능 프로그램이 제공된다는 방안에 최소한의 문제제기는 있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현재 케이블이나 위성방송 미가입률이 32%나 된다. 케이블망 자체를 설치할 수 없는 섬과 산간지역의 가구 수는 우리나라 전체의 10%에 이른다. 초고속 인터넷망 보급률은 71%에 달하지만 농?어촌의 경우는 42%에 불과하다. 게다가 쓸만한 컴퓨터 하나 장만하려면 100만원은 족히 든다. 경제적 부담 탓에 준 공교육인 EBS의 수능 과외로부터 소외되는 학생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수능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없는 지역을 줄이고 저소득 가정의 학생을 지원하겠다는 정부의 후속 대책이 나왔다. 언론의 중계 보도도 이어졌다. 하지만 왜 무료로도 가능한 서비스를 굳이 유료로 제공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은 던지지 않았다. 대신 수능 특수를 겨냥한 가전업체가 어떤 제품을 내놓았는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영세 학원들이 어떻게 대응하고 나설지, 이번 조치가 강남 집 값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따위와 같은 세간의 입방아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언론은 심지어 스타 강사의 행보가 이번 조치의 성패를 가늠하는 관건인양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방송용 강사를 사교육 열풍을 잠재우는 ‘스타’로 취급하고, 일선 교사들은 단순한 지식 전달자도 아닌 시간 맞춰 EBS 수능 프로그램 틀어주는 일개 ‘리모콘 조작자’로 전락시키는 꼴이다. 이쯤 되면 언론은 있으나마나한 기관이 아니라 차라리 없는 게 나은 존재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