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옛날 영남 대로(嶺南大路) 등 상경(上京) 길가에 사는 농가들에서는 고구마나 떡, 짚신 같은 물건을 길가의 목판에 차려놓는 무인(無人) 물물교환을 했었다. 그런데 비가 올 성싶으면 목판을 거적 집을 지어 들여놓았는데 이것이 가가의 기원이라는 설이다.
둘째, 옛날 일용품을 지게에 지고 팔고 다녔던 무시로 장수들이 한 마을에 들어 정자나무 아래 거적을 치고 며칠 유숙하며 벌였던 무시로 가가가 발전했다는 설이다.
셋째, 마을 제사가 있을 때 그 제사 음식을 마을 사람들에게 고루 나누어 주던 임시 건물이 가가 곧 구멍가게의 뿌리라는 설이다.
이 여러 가지 설에서 보여지는 공통점은 모두 다 임시로 설치한 작은 건물의 공간에서 물건을 팔거나 나누어주었다는 점이다. 이 건물은 영구 건물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헐 수 있는 임시 건물인 가가(假家)인 것이다.
이러한 가건물이 본격적인 상거래 장소로 세상에 공인 받기 시작한 것은 서울의 종로대로가 개통된 후였다고 한다.
종로대로는 그 폭이 50자 내지 80자였다고 하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30자로 차츰 줄어들곤 했다. 상인들이 가건물들을 앞다투어 내어 지었기 때문에 길이 좁아졌던 것이다. 그러다가 임금님의 대가 행차(大駕行次)가 있으면 그 전날 밤에 관원들이 나와서 철거하여 원상복구 시켜 놓고 다시 대가 행차가 있기까지 길이 다시 좁아지는 등 수축을 거듭해 내린, 이른바 나일론 도로였다.
이 상점들에서는 일반인에게도 물건을 팔았지만, 주로 관청에 물건을 공급했다고 한다. 그 상점 중에 가장 큰 것을 ‘전(廛)’이라 했고 그 다음이 ‘방(房)’이었으며 그 다음이 가가(假家)였고 제일 작은 것이 ‘재가(在家)’이었다. 아직도 상점을 ‘전방’이라고 부르는 노인들이 있는데 이 ‘전방’이라는 말은 바로 전(廛)과 방(房)이 합쳐져 쓰인 데서 유래된 것이다. 이 전방과 관련하여 수십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시골에서 가게를 ‘송방(松房)’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송경(松京)에 속한 가게’라는 뜻이었다.
고려가 망하고 수도가 송경 즉 개성(開城)에서 한양(漢陽)으로 옮겨가자 그곳 사람들은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 그들이 그 좌절감을 보상하는 방법으로 택한 것이 장사였다. 한국의 베니스 상인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개성사람은 돈을 버는데 귀재였다. 그들은 현재 성행하고 있는 일종의 체인점 체제를 고안하여 운영했다. 따라서 ‘송방’이란 송도에 본점을 둔 가게의 체인점이라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
한편 우리는 흔히 격에 맞지 않는 것을 빗대어 ‘가게 기둥에 입춘(立春)’이라는 속담을 쓰고 있다. 입춘 날에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등 한문으로 된 좋은 글귀를 기둥에 붙여 그 해의 복을 비는 풍습을 입춘첩(立春帖)이라고 한다. 이 입춘첩은 잘 지은 집의 기둥이나 대문에 붙여야 어울리는데 가게와 같은 허름한 집 기둥에는 격이 맞지 않음을 빗대어 나타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