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문답이 청소년들 사이에 심심찮게 나돌아 듣는 이로 하여금 폭소를 자아내게 한다. 이 허수아비는 허수+아비의 복합어이니까 언뜻 생각해 보면 허수아비란 허수의 아버지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아비’란 단어는 현재 사전에 아버지의 별칭(別稱), 또는 낮춤말로 적혀 있고, 또한 우리의 옛 문헌에도 「父는 아비오(月印釋譜 14)」, 「아비부(父), 아비야(爺)(훈몽자회(訓蒙字會 상 31)라 기록되어 있으니 이러한 해석도 결코 무리한 것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고 보면 이같은 기록은 근세 이후의 것이요, 그 이전의 기록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아비’란 아버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 일반을 총칭하는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고려조(高麗條)의 ‘처용가(處容歌)’를 보면 “어와 아븨즈이여, 처용아븨 즈이여」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를 현대어로 쉽게 풀이해보면 ”아! 아버지 모습이여! 처용의 아버지의 모습이여!”로 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 노래의 내용은 사실 그처럼 처용의 아버지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니라 처용 자체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따라서 이 노래의 전후 문맥으로 보아 “아 (멋있는) 사나이의 모습이여! 처용이란 사나이의 모습이여!”로 풀이해야 뜻이 확실해진다.
여기서 보다시피 ‘아비’라는 단어가 처음에 사내(남자)를 지칭했다는 증거는 ‘도깨비’라는 말에서도 엿보인다. 알다시피 ‘도깨비’는 ‘귀신’에 대칭(對稱)되는 낱말로서 사내 쪽을 일컫는다. 우리가 흔히 귀신이라고 하면 머리는 길게 풀어 내리고 입가에는 붉은 피를 흘리면서 바람결에 흘리는 듯한 음성을 발하는 죽은 여인을 일컫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반하여 ‘도깨비’는 머리에 외뿔이 달리고 울퉁불퉁한 근육의 반 나체(半裸體)에다 가시 돋힌 방망이를 들고 다니는 죽은 사내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 ‘도깨비’는 원래 ‘돗가비(석보상절 9:36)-독갑이(역어 하:52)-도깨비’로 옛 문헌에 표기되었는데 여기서 ‘돗’은 (뿔이)돋음을 나타내고 ‘아비’는 사내를 나타내니 도깨비는 곧 뿔이 돋은 사내라는 뜻이 되겠다.
어디 그 뿐인가?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함진애비’ ‘중신애비’ 역시 ‘함을 진 사람의 아버지’ ‘중신을 서는 사람의 아버지’가 아니라 ‘함을 진 사내’ ‘중신을 선 사내’라는 뜻이다. 그도 그럴것이 지금은 중신을 주로 여자가 서지만, 바깥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옛날에는 남자가 주로 중신을 섰던 것이다.
그런즉 ‘허수아비’는 ‘가짜 모습을 한(헛+의)사내’라는 뜻이지 허수의 아버지를 일컫는 말은 결코 아니다. 따라서 요즈음 심심찮게 지방에서 열리는 허수아비 전시회에서 치마 저고리를 입거나 스커트를 입은 허수아비를 보게 되는데 허수아비가 가짜남자인 이상 여자모습의 허수아비는 일찍이 없었기에 이 모습은 허수아비의 격에 맞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