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서울대의 거세를 논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에게 대놓고 자폭하라는 식이다. 한다면 하겠다는 식이다. 위협적이고 노골적이다. 서울대가 없어져야 될 논거들도 집대성을 이루고 있다. 프랑스 고등교육개혁 사례도 들먹이고, 독일대학 개혁도 내세운다. 서울대가 필멸해야 한국대학들이 살아난다는 식이다. 서울대 수준의 투자를 국공립대 전반에 확대하면 더 많은 인재가 생겨난다는 논리도 뼈대를 갖추고 있다. 서울대가 없어지면 대학입시의 경쟁이 완화된다는 식으로 학부모에게 위안도 주는 모양이다. 그 모두가 경험 측에 어긋나는 언술들이다. 뻔히 알면서도 저들은 그렇게 이야기해야만 직성이 풀린다는 표정들이다.
그런데 헛기침을 터트리게 만드는 국면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서울대 폐지에 대한 논의가 대학교육발전의 관점이 아니라 권력이동의 시각이기 때문이다. 서울대에게 자구의 기회부터 주었어야만 했다. 서울대를 개혁하려고 했다면 이미 80년대 초반에 했었야 했다. 지금 세계 어느 나라도 고등교육의 개혁을 명문대학 폐지 쪽으로 몰고 가지는 않는다. 그렇게 성공한 나라가 없다. 일본은 실험중이지만 후회하는 쪽에 가깝다. 프랑스의 대학개혁이나 독일의 대학개혁도 옛 이야기일 뿐이다. 서울대 폐지론을 흘려들으면서 한국대학교육의 희생을 목도하는 느낌일 뿐이다.
이번에는 서울대가 꼼짝없이 당하는 형국이다. 이 정도의 수모라도 다행이라는 식이다. 정치권력의 게임에서 완패했기에 어쩔 수 없다는 표정들이다. 역대 대통령 후보치고 서울대 폐지론을 들고 나와 대통령으로 당선된 사람이 없었다. 정치권에서는 노 대통령이 첫 번째 주자였다. 그는 민주당 대선후보 시절인 2002년 9월 시민단체 토론회에서 개인적으로는 서울대를 폐지해야 한다고 했다. 여론때문에 없애겠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고만 했었다. 이번에는 민주노동당의 서울대 필살론이 여론을 타고있다. 서울대 폐지가 총선공약이었다. 그들의 원내 진출과 더불어 서울대 폐지론에 정치적 힘도 실린다. 이런 기류를 타고 대통령직속 교육혁신위원회가 ‘국립대 공동학위제’를 제안할 모양이다. 서울대 폐지론은 이제 참여정부의 대학개혁 정책과 어울려 모든 구색을 갖추었다. 열린 우리당의 입만 열리면 서울대 폐지론에 속도감이 붙게된다.
서울대는 이제 포로 신세이다. 사실 서울대가 그렇게 약할 줄은 몰랐다. 논리보다는 고작 볼 멘 소리들 뿐이다. 서울대는 미국의 작은 주립대보다도 훨씬 뒤떨어지는 예산과 무능력한 관료주의의 간섭 속에서도 세계 최고의 대학들과 경쟁하고 있다는 항변에는 맥이 빠진다. 서울대에 우수한 학생과 교수진이 모여 있기 때문에 그나마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호소는 애처롭기 그지없다.
서울대를 폐지해도 한국대학의 경쟁력은 살아나지 않을 것이다. 서울대를 국공립공동학위제로 편입시켜도 대학의 질은 변하지 않는다. 국민의 혈세로 국공립대를 먹여살리겠다는 그 발상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립대를 수십번 개혁해도 헛수고다. 서울대를 척살하고 그 족보까지 불태워도 그 언제가는 복원될 것이다. 잘라내기는 일순간이지만 키워내려면 시간이 걸란다.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한국대학교육의 문제를 서울대존폐로 정리하려는 그 발상자체가 덜 영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