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 대한 이런 식의 편견이 형성된 것은 과연 언제 무슨 이유로 이뤄진 것일까. 이를 알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가족사’다. 특히 17세기는 한국 가족사에 있어 커다란 변혁기로 주목할 만한 시기다. 그러나 전통시대 가족사는 자료 부족을 이유로 제대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근현대 가족사에 관한 연구 저서도 거의 없는 형편이었다. 이제 우리의 전통 가족사를 한번쯤 되돌아봐야 할 시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은 향랑 사건을 통해 바로 그 가족사를 갈등적 측면에서 새롭게 고찰하고 있다.
향랑은 17세기 후반을 살다가 18세기 숙종 28년(1702)에 자결한 여인이다. 18세기 여러 문인들은 전형적인 열녀담의 형식으로 향랑의 자결을 형상화했는데, 이로 인해 향랑은 이 시기의 대표적인 열녀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향랑은 여느 양반 계층의 열녀들처럼 남편에 대한 정절을 지키기 위해 자결한 여인이 아니었다. 다소곳하고 얌전하게 자신을 죽이고 살았던 여인도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잔잔한 행복을 그려가고 싶어했던 평범한 여성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왜 평범한 여인 향랑은 왜 자결을 하게 되었을까?
향랑은 17세기 같은 마을에 사는 임천순의 아들 칠봉과 혼인을 했는데, 칠봉은 향랑을 미워하여 폭력을 행사하기 일쑤였다. 그 폭력을 견디다 못한 향랑은 칠봉과 갈라서고 친정으로 돌아오지만 친정 부모는 그녀를 받아주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숙부 집에 몸을 의탁했으나, 숙부가 개가하기를 종용하자 향랑은 이를 거부하고 다시 시댁으로 찾아간다. 그러나 시아버지 또한 그녀에게 개가를 권유하며 받아주지 않는다. 개가를 원치 않았던 향랑은 자결을 결심하게 된다. 그녀의 자결은 자신의 의지가 통용되지 않는 사회에 대한 일종의 저항이었다. ‘산유화’는 자결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한 맺힌 인생사를 설명해주는 노래이자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전 사회계층에 남존여비 의식이 팽배해지면서 향랑과 같은 서민층 여성들이 많은 희생을 당했다. 그러나 이 여성들을 자기주장이라고는 전혀 내세우지 못했던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여인이라 평가하는 것은 큰 잘못일 것이다. 많은 서민층 여성들이 향랑과 같이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고 드러냈으며, 자신들도 분명한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임을 명백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강제와 타의가 횡횡하는 가족체제를 향하여 온몸으로 저항한 조선조 여인, 향랑의 구슬픈 가족사를 만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