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경향신문 경제부장, 편집국장, 주필
문화일보 주필, 전무이사 / 문화일보 대표이사 사장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
현재) 상지컨경영설팅(주) 회장, 인터넷신문 프레시안 고문
* 주요 저서
- 한국의 경제관료(공저), 1979 / 거탑의 내막(공저), 1983 / 한국의 이너서클, 2002
한번은 사형대가 보이는 곳을 포착, 그곳을 촬영하다가 현지 경찰에 들켜 조사를 받은 것이고 또하나는 유전지대를 취재 나갔다가 군인들에게 잡혀 조사를 받은 일이다.사형대가 보이는 운동장 촬영은 쿠웨이트여서 다행이었다. 쿠웨이트는 그래도 아랍 세계에서는 개방이 된 편이어서 현장에서 풀려났다.
그러나 사우디 유전 취재는 경비군 막사까지 끌려가 심문을 받았다. 현지인 안내자가 있었지만 완전히 구경꾼으로 돌아가 아무런 도움이 못 됐다. 한국의 건설업체 현장과 중동(사우디)과의 협력관계를 취재하러 왔다가 길을 잘못 들어 그렇게 됐다고 여러 차례 해명을 하고 나서야 사진 기자와 나는 풀려났다.
이라크라는 나라는 이란의 코람샤르 항 건설 현장에서 많은 사전취재를 할 수 있었다. 가장 개방적이며 정부는 건설에 가장 열의가 있고 아랍세계에서는 비교적 열린 지역이라는 것이었다.
50일 간의 취재를 끝내고 돌아오는 내 느낌은 외적 현대화-도로를 놓고 호텔을 짓고 항만을 건설하는-가 이루어지고는 있으나 내적 현대화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회색의 땅’이라는 것이었다. 테헤란도 바그다드도 세계의 도시였지만 호텔 전화부에는 오리지널 아라비아 숫자만이 기록돼 있을 뿐이었다. 그 배타성이 이슬람의 교리 때문인지 기독교 문명으로부터 입은 피해 때문인지는 몰라도 ‘우리 식’대로 산다는 의식이 공통적으로 강했다. 적어도 ‘오일 동맹’을 맺어 중동 블록이 세계를 흔든 배경에는 이런 ‘우리식’의 이념이 바탕이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현지에서 만난 한 사업가는 1차 오일쇼크를 만들어 낸 아랍세계의 헤게모니 이벤트는 ‘카이로 대학의 30년 산물’이라는 표현을 썼다. 중동지도자들이 카이로 대학에서 공통의 적에 대해 배웠고 전략을 숙성시켜 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세계에서는 아라비아 패권 장악을 위한 정치적 암투가 잠재돼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바로 이란과 이라크 사우디가 아랍 맹주 자리를 놓고 벌이는 각축전이다. 페르시아 만 앞바다를 놓고 ‘페르시아 해’냐 ‘아라비아 해’냐 그 명칭을 둘러싼 싸움에서 그 한 단면을 읽어낼 수 있었다. 어떻든 이 복잡한 다른 문명권에서 한국의 민간 기업들은 열심히 돈을 벌고 이 지역의 관습과 문화풍토를 배웠다.
그때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다. 세계도 변하고 아랍세계의 정치지도도 크게 변했다. 그리고 한국의 한 젊은이가 이라크에서 희생됐다. 그것도 참수라는 끔찍한 방법에 의해 살해됐다. 국내 여론은 분노와 개탄으로 들끓고 있다. 그리고 급기야는 ‘파병이냐 반대냐’로 국민 여론이 갈라지고 있다. 또 한편에서는 속수무책, 인질로 잡힌 자국 국민의 생명 하나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정부에 대한 원성이 높다. 사태를 결과한 과정과 원인에 대한 비판과 여론의 향배는 중요하다. 그러나 나는 이 사건의 메시지에서 하나 중요한 대목을 지적하고 싶다.
과연 우리는 아랍세계에 대한 정보와 지식과 로드맵을 얼마나 저장하고 있었던가 하는 문제다. 30년 동안 축적된 정보와 인적 라인은 어디로 갔는가. 그저 오일달러만 벌고 철수해 버린 게 아닌가. 이미 30년 외교와 사업현장의 경험과 지식과 접촉 라인을 갖고 있던 세대는 일선에서 물러나 있다. 물러난 것으로 그친 게 아니라 국내 정치세력의 교체와 더불어 사장돼버린 인상이다. 과연 온갖 방법으로 그를 구출하려했다는 ‘온갖’에 30년의 정보축적이 가동되었는지 알고 싶다.
아랍세계에서는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곤란한 일에 대해 ‘인샬라’라는 말을 쓴다. ‘알라의 뜻’이라는 말이다. 이 비극적 사태에 대해 우리도 ‘인샬라’라 말하고 끝낼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