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인재의 보고다. 특히 해당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이 포진한 교수집단의 경쟁력이야 말로 ‘대학 경쟁력’에 다름 아니다. 어떤 인재를 선발하고 어떻게 지원, 관리하느냐는 대학의 미래를 좌우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대학의 교수채용 및 인사관리 시스템은 아직도 주먹구구식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오늘 날 대학은 보편적 진리를 연구하고 교육하는 유니버시티에서 직업교육, 사회교육, 산학협동 등 사회적 수요에 부응하는 멀티버시티로 변화하고 있다. 또 사립대의 경우 공적 성격과 더불어 경영적 성과를 도외시할 수 없는 특수한 기업으로서의 성격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지금은 이같은 시대적 변화에 따라 종래의 교수인사제도를 점검, 새로운 변화를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김문현 이화여대 교무처장)
지난 7월 전국 대학 교무처장이 모인 자리에서 ‘교수임용 및 승진제도의 현황과 과제’를 주제로 발표한 김문현 이화여대 교무처장은 “지금이야말로 교수인사제도의 변화를 모색할 때”라고 주장했다.
대학의 기능 다양화에 따라 교수임용제도도 다양해져야 한다는 내용으로, 교수의 역할에 맞춘 임용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학가에는 최근 몇 년 사이 전임교수 뿐 아니라 연구교수, 강의전담교수, 겸임교수 등 다양한 형태의 교수직이 증가하면서 채용·인사제도도 다각적인 변화가 모색되고 있다. 정년보장 교수가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반면, 단기계약 교수들은 증가하고 있으며 승진을 위한 업적평가도 강화되는 추세다.
그러나 세부시행 과정에서 문제나 교수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교수들은 이같은 제도가 신분불안을 야기해 교수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업적평가 등 심사에만 급급해 궁극적으로는 연구의 질이 저하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밖에 평가기준과 평가시스템 적용의 형평성 문제도 풀어야 할 숙제로 남겨졌다.
◆교수 단기임용 늘어
최근 사립대에서는 1~2년 사이의 단기 교원 임용이 부쩍 늘고 있다.
대학교수 계약제 임용이 본격화되면서 일부 대학에서는 신규교원 대부분을 1년 이하 계약으로 뽑는 사례도 있었다.
설훈 의원(민주당)이 지난해 분석, 발표한 ‘사립대학 교원 임면현황’에 따르면 지난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최근 3년 동안 대학들은 신규교원의 최초임용기간을 과거의 절반 수준인 1~2년 정도로 단축시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수 직급별 단기임용 추세를 살펴보면 ‘전임강사’는 지난 2000년 12.3%(1백62명)이 1년 이하 임용됐으나 이듬해인 2001년에는 16%(2백12명)로 3.7%포인트 늘었다.
‘조교수’도 2000년 16.5%(1백9명), 2001년 14.2%(1백명)으로 전임강사와 비슷한 수준이었으며, 2년 이하로 임용된 조교수는 2000년 62.9%, 2001년 50.2%로 절반을 넘겼다.
임용기간 단축 현상은 정년을 보장받던 부교수나 정교수 직급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2000년 정교수 채용현황을 살펴보면 전체 62명 중 72.6%(45명)가 2년 이하로 임용됐고 이중 4명(6.5%)은 1년 이하 임용자였으며, 2001년에는 신임 정교수 중 52.9%가 2년 이하로 임용됐다.
대학별 교원임용 현황을 보면 이화여대가 지난 2000년부터 2002년 8월까지 최근 3년간 1년 이하 단기 임용이 가장 많았다. 이화여대는 기간 중 임용교원 1백61명 중 80.7%(1백30명)를 1년 이하로 임용했다.
이밖에 아주대는 총 임용교원 74명 중 54.1%인 40명을, 동명정보대는 2000년, 2001년 2년 동안 92.6%인 25명, 세종대는 98.7%인 78명, 한국외대는 91.4%인 32명을 1년이하로 단기 임용했다.
◆ 교수 채용·인사제도 다양화 사례
이런 가운데 일부 대학에서는 교수채용·인사제도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연세대, 성균관대 등 최근 교수채용·인사제도를 개정한 대학들의 채용·인사제도 원칙은 ‘경쟁력 제고’. 정년보장 교수의 비율을 낮추는 대신 특별채용 방식을 통해 세계적 석학을 채용한다는 것이다.
연세대는 지난해 말 올해 초 부교수 정년보장제를 폐지하고 계약기간을 최장 6년으로 한정하는 ‘비정년트랙 전임교원’제도를 도입하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교원인사규정 개정을 단행했다.
연세대는 올해부터 신규임용된 부교수에 대해 정년보장제도를 폐지하고 7년 이내에 심사를 거쳐 재임용되도록 했다. 대신 연구업적이 뛰어난 교수들의 경우 특별채용을 통해 직급에 관계없이 정년보장 조건으로 임용할 계획이다.
연세대는 또 올해부터 교수 계약 기간을 최장 6년으로 한정하는 '비정년 트랙(track) 전임교원' 제도를 실시한다. 이 제도를 통해 선발되는 교수들은 전임교원과 같이 보험 및 연금 등 복지혜택을 받지만 직급에 상관없이 2년 단기로 계약임용 되며, 승진은 되지 않는다. 재임용은 2회로 제한되며 2번에 걸쳐 재임용된 교원은 자동 면직된다.
연세대는 이 제도에 대해 “시간강사, 학사지도교수 등 기존에 교원으로서의 혜택에서 소외돼 있던 교수들의 처우를 개선, 교육을 질을 높이자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성균관대는 최근 발표한 ‘성대발전 비전 2010+’ 계획에서 현재 100%에 가까운 교수 정년보장 비율을 70%로 낮춰 교수의 연구력을 제고하는 동시에 스타교수 영입전략인 ‘Core Faculty 스카웃’을 강화해 세계적 석학을 초빙하고 잠재적 우수연구자에게 문호를 열 방침이다.
성균관대는 “정년보장 교수비율 70% 계획은 미국대학 중 정년보장 교수비율이 가장 높은 대학을 기준으로 삼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변화된 인사제도에도 쟁점은 있다. 분야별 특성을 살린 다양한 평가모형에 대한 요구와 설득력있는 평가기준 마련 등의 문제. 특히 ‘경쟁력 제고’에 초점을 맞춘 시스템이다보니 ‘평등욕구’와 ‘경쟁요소’의 마찰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한 교수는 “일반적으로 정년보장 심사를 위한 연구는 단기적인 성과가 예상되는 것들로, 궁극적으로 교수 자신이 지향하는 연구와는 차이가 크다”며 “미국의 대학에서는 4~7년 정도 지난 신임 조교수에 정년보장 심사의 기회를 주지만 우리의 경우 12년 동안을 정년보장을 받기 위한 단기 연구에 집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또 “경쟁력 제고를 위해 채택한 방법이 궁극적으로는 대학의 경쟁력을 갉아먹게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이런 우려에 대해 문희수 연세대 교무처장은 “전공특성을 고려한 글로벌 스탠더드를 적용하고, 평가기준 설정에 전공별 자율결정을 적극 수용할 방침”이라며 “연구·교육·봉사 부문의 분리평가로 평가의 균형성을 높이고, 평가기준의 유연성을 확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 교수임용 및 승진제도의 과제
교수임용 제도의 다양화를 주장한 김문현 이화여대 교무처장은 “비전임교수의 경우 대학의 필요와 역할의 성격에 맞도록 유연성이 확보돼야 하며, 이를 명확히하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전임교수는 교수의 연구·교육능력의 지속적 개발과 향상,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치, 주체성보장을 위한 신분보장이라는 측면에서 계약제와 정년보장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것. 또 계약제와 기간임용제 도입 과정에서 교수의 신분을 보장하고 법적 분쟁을 피하기 위해서는 “재계약 여부에 대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기준과 절차, 구제절차 등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교수승진제도에 대해서는 “기업이나 관료사회와는 다른 대학의 성격과 대학교수의 역할에 비추어 승진을 억제하거나 일정비율에 한정할 이유는 없다”며 “교수의 연구·교육·봉사 실적을 향상시키기 위한 방향으로 승진제도를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 처장은 이를 위해 학문적 능력이 충분히 검증된 교수의 경우 제한적으로 승진이나 정년보장에 특진 개념을 도입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