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학 발전 과정은 서양과 사뭇 다른 모습으로 전개됐다. 서양의 대학이 사회 경제 발전에 따라 자생적으로 발전한 사학(私學) 형태를 띄고 있는 반면 우리 대학은 국가의 통치이념을 보급하고 관리를 양성하는 국가기관의 일종인 관학(官學) 형태로 발전했다.
조선시대 성균관도 예외가 아니다. 성균관은 국가 통치이념이었던 성리학 즉, 유학 교육 기관이었지만 과거시험 준비기관의 성격을 강하게 띄고 있었다.
16세기 이후 사립 서원(書院) 설립이 늘면서 성균관은 점차 쇠퇴했으며, 한 때 정원 미달 사태를 겪기도 했다. 성균관이 근대국가의 인재 양성소로 탈바꿈하지 못한 것은 역사적으로 아쉬움이 크다. 일제 강요에 따른 것이지만 성균관은 석전(釋奠, 공자를 비롯한 성현에게 제사지내는 의식)과 향사(享祀, 서원에서의 제사) 관련 업무만을 맡게 됨으로써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중단하게 됐다.
근대적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첫 고등교육기관은 1885년 설립된 배재학당이다. 뒤이어 1886년과 1887년 이화학당과 숭실학당이 각각 설립됐다. 숭실학당은 1905년 ‘숭실대학’으로 개편되면서 우리나라의 첫 번째 '대학'이 됐다. 최초의 의과대학은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전신인 광혜원으로 미국 의료선교사인 알렌(Allen)이 1885년 세웠다. 세브란스 의과대학은 1957년 연희대학교와 합병, 오늘의 연세대학교로 탈바꿈했다.
일제강점기 우리는 '대학'이란 이름조차 자유롭게 쓰지 못하고 대신 '전문학교'란 이름만 사용해야 했다. 세브란스(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전신), 보성(고려대학교 전신), 이화(이화여자대학교 전신), 혜화전문 (동국대학교 전신), 연희(연세대학교 전신), 숙명(숙명여자대학교 전신) 등의 고등교육기관이 '전문학교'라는 이름으로 설립됐다. 1924년 설립한 경성제국대학(지금의 서울대학교 전신)만이 유일하게 '대학'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됐다.
이들 사립 전문학교는 광복을 맞으면서 대학으로 각각 승격했고, 이들 외에 수많은 국립대학과 사립대학이 전국 각지에서 설립됐다.
고등교육법상 '대학'의 이름이 붙은 교육기관은 현재 ▲대학 ▲산업대학 ▲교육대학 ▲전문대학 ▲방송통신대학 ▲기술대학 ▲각종학교등이 있다.(고등교육법 제2조)
해방 이후 우리나라 고등교육은 부분적 제도변화와 함께 급격한 양적 성장을 이뤘다. 1948년 정부수립 당시 고등교육 기관은 42개에 그쳤다. 교원과 학생은 각각 1,265명과 2만 4,000명 수준을 기록했다.
반세기가 흐른 1998년 기준, 국내 4년제 대학은 201개교로 급팽창했다. 학부재적학생수만도 165만 3,178명으로 69배 늘었다. 교원도 4만 3,107명으로 34배 증가했다.
1995년 우리나라 대학 진학률은 52%로 일본의 41.4%를 앞질렀다. 이는 동남아 국가들의 평균치인 20~30%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한편, 중국의 대학 역사는 주나라 국학기관으로 시작한다. 근세 청일전쟁 이후 중체서용(中體西用) 원칙에 따라 근대화를 담당할 새로운 인재양성기관으로 경사 대학당이 설립됐다. 신해혁명 이후 베이징 대학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일본은 에도막부에서 서양 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1856년 설립한 양서조소(洋書調所)가 근대 교육기관의 시작이다. 양서조소는 1886년 제국대학으로, 1946년 다시 도쿄대학으로 개명했다. 게이오기주쿠 대학은 후쿠자와 유키치가 제국대학에 대한 대안으로 설립했다. 이후 도시샤 대학이 1875년 그리스도교 전도사에 의해 설립됐고, 1902년 와세다 대학으로 개칭된 도쿄전문학교는 1882년 창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