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탈락규정은 국가에서 지원을 받는 연구단에 중간평가를 실시해 일정 비율의 사업단을 강제 탈락시키는 것으로 과기부의 지원사업 중 창의사업과 NRL사업에 적용된다.
이 규정에 따르면 창의사업에서 하위 15% 이상, NRL의 경우 하위 20% 이상의 연구단이 ‘반드시’ 탈락한다. 이 규정은 연구단의 '희망적 긴장(Blue Tension)'을 유발해 연구성과 질을 높이고자 만들어진 것으로 과기부는 내년부터 기초연구지원사업에도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지난 22일 발표된 창의사업 중간 평가 결과에서 ‘강제탈락규정’으로 6년차인 암흑물질탐색연구단(단장 김선기 서울대 교수)과 3년차인 보로노이 다이어그램 연구단(단장 김덕수 한양대 교수)이 탈락했다. 이번 사업 탈락으로 이들 연구단은 지금까지 받던 연구 지원금을 더 이상 못 받게 됐을 뿐 아니라 신규과제를 개발해도 이 사업에 다시 신청할 수 없어 그동안 진행해 온 연구가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놓였다.
◆서로 다른 분야의 연구 성과를 상대평가한다(?) = 문제는 이들 연구단이 왜 탈락했느냐이다.
보로노이 다이어그램 연구단장인 김덕수 한양대 교수는 “이 분야에서 유명한 CAD 저널에 연간 논문 점유율이 5.3%에 달하고, SCI급 논문 발표건수도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전체 논문의 60%가 넘는다”며 과기부의 이번 성과 평가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발표심사 당시 심사위원단 중 산업공학 전공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며 “과연 이 연구결과를 심사위원들이 제대로 이해하고 평가했는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지난 3월 일본 고시바상을 수상해 화제가 됐던 김선기 서울대 교수의 암흑물질탐색연구단도 이번 평가에서 탈락했다. 김 교수는 “‘암흑물질’이란 새로운 물질을 여러 언론에 소개해 과학의 대중화에 일조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결과가 나오니 허탈하기만 하다”며 착잡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같이 심사를 받았던 다른 연구팀을 보니 네이처(Nature)나 사이언스(Science)지에 논문이 많이 실렸다고 하는데 이 연구는 이런 학술지에 실릴 수 없는 분야”라며 이번 상대평가방식의 비합리성을 지적했다.
이들 연구는 각기 다른 분야지만 초반 연구에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그 결과가 나온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김덕수 한양대 교수는 “3년 중 2년을 소프트웨어 개발에 투자해야 했다”고 말했고, 김선기 서울대 교수도 “첫 결과가 5년 만에 나왔지만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빨리 결과를 얻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결과가 매년 나올 수 있는 다른 분야와 상대 평가할 경우 불리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과학재단 관계자도 탈락한 이들 연구단 성과가 미진한 것이 아니라 ‘강제탈락규정’ 때문에 부득이하게 탈락시켰다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이 관계자는 “연구단 선정 당시 20대1이라는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선정된 연구단의 연구 성과가 미진할 리 있겠느냐”고 반문한 뒤 “규정 때문에 심사에서도 상당한 고민을 했다”며 어려웠던 입장을 토로했다.
결국 이번 평가가 절대적 기준을 적용한 것이 아니라 탈락된 연구단이 다른 연구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성과가 부족했을 뿐 이들 연구단이 보여준 성과는 훌륭했다는 설명이다.
◆연구결과 나오기도 전에 무조건 '중단'…"국가예산 낭비" = 이번 평가에서 탈락된 사업단은 앞으로 인건비나 시설 제작비 등에 제약을 받게 돼 더 이상의 연구 진행이 어렵게 된다. 애초 세운 연구목표 달성에 차질을 빚는 것은 물론이고 향후 연구단 운영도 어려울 전망이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국가가 그동안 3년∼6년간 10억원 이상씩 지원한 연구를 성과가 '상대적 기준에서' 부족했다는 이유로 중단해버리는 것은 너무 성급하고, 국가예산을 오히려 낭비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창의사업은 통상 9년 동안 매년 5억∼8억 가량 지원된다. 정부가 예산 절감을 위해 마련한 '강제 탈락 규정'으로 정부가 이미 투입한 절반 가량의 국가 예산이 오히려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는 주장이다.
안도열 창의사업단협의회장(서울시립대 교수)은 “강제탈락규정이 연구자에게 부담감을 주어 성과가 좋아질 수 있지만 모든 연구를 똑같은 기준에 놓고 상대적으로 평가해 지원을 중단하는 것은 오히려 예산 낭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안 교수는 "강제 탈락 보다는 중간평가 결과에 따라 연구비를 줄인다든지 하는 탄력적 운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