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특강' 'ㅇㅇ교수법' 등 교수법 특강이 대학가에 확산되고 있다. 아무리 어려운 학습내용이더라도 좋은 교수가 '잘만(?)' 가르칠 수 있다면 학생들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본지는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의 '교수강의법: 가르침의 본질'을 연재한다.
박 교수는 현재 미국 피츠버그대학에 교환교수로 나가 강의 하고있고, 「대학 강의의 본질」을 주제로 삼아 연구를 진행 중이다.
서울대 학부와 대학원을 거쳐 미국 피츠버그대 교육행정학과(Ph.D.)를 졸업했고. 전세계비교교육학회(WCCES) 부회장과 교육부평가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교육혁신위원회 전문위원과 본지 전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켄 베인 교수에 따르면, 최고 교수들은 학습과 지식의 본질에 대해 거의 비슷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 그는 질문하는 나에게 오히려 학습이론과 동기부여이론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질문했다.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이들 이론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갖고 공부하려 한 적이 있는지도 물었다.
역사학자인 그는 학생들 앞에서 강의하는 도중 학습이 어떤 과정을 통해 이뤄지는지에 대한 ’학습이론’과 본인이 의미 있다 생각하는 주제에 학생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동기유발이론’도 모른 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음을 문득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이유로 관련 서적을 탐독하고 그만의 관점을 정리하며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있다 보니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됐다고 전했다.
전공이 교육학(교육행정학)인 필자 역시 켄 베인 교수가 지적한 이들 이론에 관해 알고 있지만 돌이켜보니 강의 개선을 위해 이들 이론에 특별한 관심을 쏟으며 수업을 진행하지는 못했음을 새삼 깨달았다.
최고 교수들은 기억 혹은 기억을 담당하는 우리의 뇌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전문가들은 “학생의 뇌는 채워져야 할 「그릇」이 아니라 강한 훈련을 받아야 할 「근육」이다.”(Mike O'Connell. Cronicle of H.E April 20, 2007. B5)으로 이해한다.
뇌가 그릇이라면 가르치는 일은 학생들의 뇌에 많은 지식을 넣어주는 활동이 된다. 그러나 뇌를 발달시켜야 할 근육이라고 본다면 강의는 그 근육을 훈련시키는 활동이 된다. 뇌는 단순한 그릇이 아니다. 사실 뇌는 그릇과 근육 두 가지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뇌는 저장고이면서 동시에 자료처리 장치(processing units)'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르침이 그릇에 혹은 저장고에 지식을 넣어 주는 활동이라면 교수는 학생들이 담아야할 것을 최대한 많이 제공해주고 가능하다면 저장이 용이하도록 도와주면 된다. 만일 가르침이 학생들의 뇌라는 근육을 개발시키는 활동이라면 교수는 단순히 지식을 제공하거나 이해를 돕도록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학생들로 하여금 해당 활동을 직접 해보도록, 즉 스스로 사고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야구를 가르칠 때 야구하는 방법을 설명도 하겠지만 직접 훈련을 시키는 것이 주된 활동인 것처럼 말이다. 물론 자신은 야구 이론 교수이고, 야구 실기 교수는 따로 있다면 지식이라고 하는 것을 설명만 하는 시도가 어느 정도 합리화되겠지만 대부분은 그러하지 않다.
철학을 가르친다는 것이 주로 철학자의 연구 결과를, 그리고 그들의 사상을 소개하는 활동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하버드 최고 교수의 한 명으로 꼽히는 샌들Sandel) 교수의 이야기였다.
「현대 정치철학」혹은 「정의」등등의 강의에서 그는 짧은 시간에 학생들에게 교재 내용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직접 정치철학을 행하도록 하고 있다 했다. 그의 강의는 몰려드는 학생들로 강좌당 1,000여명의 학생을 놓고 강의하고 있다. (그는 어떻게 강의하는지, 그러한 대형 강의가 어떻게 가능한지는 나중에 소개하겠다.)
반더빌트(Vanderbilt) 대학의 세포생물학 전공 노던(Norden)교수가 의대생들에게 뇌의 작동원리를 가르칠 때, 그는 간단한 설명 뒤에 무용수를 초청하여 학생들이 직접 무용을 배우면서 자신의 뇌가 어떻게 평형감을 익히고 특정 동작을 익히는지 생각하게 한 후 자신의 의견을 서로 나누도록 한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학생들 스스로 뇌라는 ‘근육’을 만들어가고, 발달시켜가도록 유도하는 것이 가르침의 본질적 활동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배움의 본질과 과정에 대한 이해 없이 가르치는 일을 하는 것은 화초 성장의 원리를 모르면서 화초를 기르는 것처럼 결국 화초를 죽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본지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