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밀양'은 '인간의 삶이란 과연 어떠한가'에 대해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이 감독이 1988년 이청준 씨의 단편 '벌레 이야기'를 읽은 후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질문이 한 편의 장편영화로 만들어졌다. 그가 4년 만에 감독 복귀작으로 내놓은 '밀양'은 인간과 삶을 향한 그의 끝없는 질문이 한층 밀도 있게 그려져 있다.
여주인공 신애(전도연 분)는 극단의 상황에 맞닥뜨린다. 그리고 종찬(송강호)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그를 묵묵히 지켜본다.
신애가 부딪힌 상황은 평범한 인간의 삶에서 가장 힘든 장면들이다. 남편이 죽은 뒤 세상의 전부인 아들과 남편의 고향 밀양에 찾아온다. 그 곳에서 신애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마저 유괴당해 죽는 모진 고통을 당한다. 아들의 죽음은 어찌 보면 신애의 자만과 허영 탓. 낯선 사람들과 융화하기 위해, 혹은 그들과 다르다고 말하기 위해 부렸던 허세가 결국 아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
신애가 밀양으로 온 첫날 만난 카센터 사장 종찬은 신애 곁을 맴돈다. 그 흔한 "사랑한다"는 말조차 하지 못한 채. 스러져가는 신애가 어느 날 갑자기 신에 의지해 교회를 찾을 때도 종찬은 그와 함께 한다.
신애가 신에게 구원을 받았다고 자신하며 아들의 살해범을 만난 순간, 신애는 자신이 생각했던 신의 구원이 얼마나 부질없었던 것인지 깨닫는다. 신에게 이미 용서를 받았다는 살해범으로 인해 신애는 인간과 신에게 절망하고 만다.
그는 일탈된 행동을 보이며, 결국 정신까지 놓고 만다.
'밀양'은 그럼에도 신애가 살아갈 수밖에 없으며, 그것이 또한 삶이라고 말한다. 고통도, 구원도, 용서도, 분노도 생이 지속되는 한 내내 안고 가야 할 삶의 편린일 뿐이다.
'비밀스러운 햇빛', 혹은 '빽빽한 햇볕'이라 해석할 수 있는 '밀양'은 대한민국 보통의 소도시이기도 하다. 누구나 그런 상황을 맞을 수 있고, 대부분 그런 상황을 맞는다 해도 그저 그렇게 살아갈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밀양'에서 햇살은 아주 중요한 메타포로 작용한다. 첫 장면 신애와 아들이 누워 바라보는 하늘에서 내리쬐는 눈부신 햇살, 신애가 신에게 절망한 채 신에게 도전하는 순간 신애를 향해 정면으로 내려앉는 햇살, 그리고 마지막 장면 신애 집 마당에 비추는 한 조각 햇살까지.
'과연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해묵은 과제를 두고두고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칸의 여인' 전도연은 누구인가=한국 최고의 연기력을 갖춘 여배우라는 평을 듣고 있는 전도연(33)이 제60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으로도 그 연기력을 인정받게 됐다.
칸 현지에서 '밀양' 시사회가 열린 이후부터 세계 언론과 영화인들로부터 어떠한 논란도 없이 '여우주연상감'이라는 평을 이끌어냈던 전도연이 마침내 '칸의 여인'으로 선택되며 최고의 순간을 맞았다.
1990년 한 화장품 회사의 모델로 선정되며 연예계에 데뷔했던 전도연은 주로 TV 드라마에서 활동하면서 '귀여운 막내 여동생'의 이미지를 가졌다. '우리들의 천국' '종합병원' '별은 내 가슴에' '젊은이의 양지' 등이 그의 초기 드라마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의 연기 인생에 전환점이 된 작품은 한석규와 공연했던 장윤현 감독의 1997년작 '접속'. 컴퓨터가 젊은이들의 새로운 문화 도구이자 소통방식으로 자리한 점을 소재로 삼아 그 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멜로의 감성을 실은 작품이었다.
드라마에서는 미처 보지 못했던 그의 배우로서의 가능성이 단 한순간에 뿜어져나오기 시작했다. 전도연은 이 작품으로 백상예술대상, 청룡영화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등 여러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휩쓸었다.
그럼에도 큰 스크린을 채우기에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며 미심쩍은 반응을 보였던 이들에게 전도연은 박신양과 주연을 맡았던 멜로 영화 '약속'(1998년)을 흥행에 잇달아 성공시켜 보이며 더 이상 의심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이어 이병헌과 공연한 '내 마음의 풍금'(1999년)에서 전도연은 전작들과 달리 순박한 시골처녀를 연기하며 연기의 폭이 넓다는 것을 증명했다.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을 비치는 그의 행보는 멈춰지지 않았다.
곧바로 선보인 '해피엔드'(1999년),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2000년), '피도 눈물도 없이'(2002년)에서 그는 여느 여배우와는 달리 파격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며 연기의 폭과 깊이를 짐작할 수 없는 배우로 누구나 인정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한석규, 최민식, 설경구, 이병헌, 정재영 등 당대 최고의 남자배우와 파트너를 이뤘음에도 전혀 밀리지 않는 연기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높였다.
배역을 가리지 않고 좋은 작품에 출연하는 그의 가치관은 배용준, 이미숙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배역을 맡았던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2003년)에서 더욱 선명히 드러났다. 자칫 두 주연에 가릴 수 있는 배역이었으나 전도연이 연기함으로써 숙부인 역은 두 배역과 똑같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는 평을 받았다.
1인2역을 연기했던 '인어공주'(2004년)에 이어 선보인 박진표 감독의 '너는 내 운명'(2005년)은 전도연의 가치를 새삼 드러낸 영화. 에이즈에 걸린 다방 레지가 그처럼 순수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관객은 전도연의 자그마한 체구에서 뿜어져나오는 폭발적인 연기력을 통해 받아들였다.
'너는 내 운명'에서 전도연을 봤던 수많은 영화인들은 "더 이상 전도연이 보여줄 수 있는 게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만큼 지금까지 전도연의 필모그래피에는 다채로운 색깔,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한 연기의 폭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도연은 '밀양'을 통해 영화인들의 불안(?)을 보기 좋게 날려버렸다. 박진표 감독이 "내가 전도연을 빼먹을 만큼 빼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고 말할 만큼 곧바로 선택한 '밀양'에서 그는 엄청난 고통에 맞닥뜨린 한 여자의 불안정한 삶을 완벽하게 연기해냈다.
'밀양'은 전도연이 영화배우로 접어든지 만 10년, 10번째로 선보이는 작품.
'밀양'으로 그는 배우로서, 또한 여자로서 아주 중요한 것을 이뤄냈다. '밀양' 촬영 도중 남편 강시규 씨를 만나 3월11일 백년가약을 맺은 것.
'밀양'은 배우이자 새색시 전도연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작품으로 남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