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전 총장 측근인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3월 중하순부터 불출마 생각을 계속 가졌고 18일 부산대 강연을 전후로 한 4월 중하순 즈음 결심을 굳혔다"고 밝혔다. "심경정리는 재보선 전에 일찌감치 끝났지만 혹시라도 선거결과에 뜻하지 않은 충격을 줄까봐 시기를 뒤로 미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정 전 총장의 이날 '드롭(drop) 선언'은 대체로 갑작스러운 용퇴로 받아들여졌지만, 정작 그의 주변과 정치권 일각에선 어느 정도 예고된 수순이라는 반응이 나온 것도 이를 반증한다. 기자회견 장소인 세실레스토랑 예약도 23일께 완료된 상태였다.
서울대의 한 교수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지난 22일에서 23일 사이 정 전 총장이 가까이 지냈던 교수 등 지인들에게 대권 도전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정리했다는 쪽으로 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정 전 총장과 열흘전쯤 만났다는 우리당 한 중진은 "위태위태한 느낌이었고 지지율도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았다"고 전했고, 2주전 가량 회동한 또다른 중진은 "당시 최종 마음이 잡힌 것 같진 않았고 그 이후 결심한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날이 갈수록 '커밍 아웃'에 대한 압박이 거세졌지만 정작 총장 시절 보직을 맡으며 절친했던 교수들을 포함, 일부 지인들은 정 전 총장의 정치참여를 적극 만류했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정 전 총장 영입에 적극적이었던 정대철 상임고문과 교감해온 한 의원은 "지난주 금요일만 해도 긍정적 사인을 받았는데 토요일날 386 제자그룹 등을 통해 부정적 뉘앙스가 감지됐다"며 막판 반전이 이뤄졌을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정 전 총장은 결심을 굳힌 후인 29일 '정치적 조언자'이자 20년 지기인 민주당 김종인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이 같은 결심을 알린데 이어 한달음에 달려온 김 의원에게 "생각을 많이 했는데 그만두는게 좋겠다"고 속내를 털어놨다는 후문이다.
김 의원은 이날 의원회관에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만류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여러가지로 정치상황이 복잡한 가운데 현 시점에서 그 판단이 맞는 것 같아서 저도 개운하게 털어내는 게 좋겠다고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이어 "나름대로 세력을 형성해 보려는 생각도 하고, 기존 정치권과도 같이 가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은데 자신의 기본 원칙에 맞지 않다고 본 것 같다"면서 "본인의 정체성 훼손을 가장 크게 염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그는 "(정 전 총장에게) 권력의지가 없었다고는 할 순 없지만 우리당에는 꽃가마 태워줘도 안간다고 했는데 찾아오는 사람들은 죄다 우리당 사람들 뿐이니 함께 할 수 있었겠느냐"며 "들러리 서지 않겠다는 생각도 강했다"고도 했다.
정 전 총장은 말만 많았지 행동은 별로 없는 정치권에 적지 않은 실망감을 느꼈으며 정치권과 언론의 지대한 관심에도 부담을 느꼈다고 한다.
정 전 총장은 대선 불출마 선언 직후인 이날 오후에도 김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그동안 고맙다"며 "오히려 홀가분한다"는 심경을 피력했다. 김 의원은 이에 "안타깝지만 차라리 잘됐다. 술한잔 마시고 털어버려라"며 위로했다.
김 의원은 정 전 총장의 향후 진로에 대해 "본인은 정년 퇴직하는 교수로 남기를 가장 원한 것"이라며 "내가 괜히 미안하게 됐다"고 말했다.
우리당 지도부도 정 전 총장의 불출마 기류에 대해 어느정도 전조를 감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핵심 당직자는 "2주 전부터 낌새가 이상했다"면서 "이번주부터 만날 약속도 줄줄이 잡혀 있어서 잘 풀릴 줄 알았는데.."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실제로 최근 지도부 회의에서는 더이상 정 전 총장에게만 기대하기 보다는 불출마를 전제로 판을 다시 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왔다고 한다.
우리당은 불출마 선언이 '전광석화'처럼 이뤄지자 허를 찔린 듯한 표정이었고 뒤늦게 부랴부랴 정 전 총장을 접촉, 만류했다는 후문이나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