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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홍일식 前 고려대 총장
"고려대 총장선출 재단 임명제로 가야"
"효사상 근본으로 '신(新)인본주의' 수립해야"
"현정부 일제시대 지식인 전체 친일파로 매도"
"총장 선출방식에 있어서 직선제와 간선제를 다 실시해 봤지만 부작용이 생겼다. 임명제로 가는 게 맞다."

홍일식 전 고려대 총장<사진>이 고려대 총장선출제도에 대해 '임명제'를 지지했다. 다만 '구성원의 신뢰를 받는 재단 이사회'를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

"직선제나 간선제로 총장을 선출하다 보니 총장이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 여러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보직을 약속하고, 편을 갈라 학내 인화가 되지 않았지요. 방향은 임명제로 가는 게 맞습니다. 그러나 다시 임명제로 가려면 재단 이사회가 전체 학교 구성원으로부터 신뢰를 받는 시스템과 인적구성을 갖춰야 합니다. 이는 고려대만이 아니라 모든 대학에 적용되는 전제조건입니다."

그는 이런 주장을 "일반론으로 제시한 견해"라고 강조하며, "재단이 도덕성과 합리성을 갖추고, 구성원들로부터 전폭적인 신뢰와 존경을 받는다면 임명제에 대한 반발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홍일식 전 총장은 1994년부터 1998년까지 제13대 고려대 총장으로 재직하며 고려대 발전의 기틀을 놓았던 인물. 현재는 세계효문화본부 총재와 한국인문사회연구원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홍일식 총재는 요즘 두 가지 문제에 천착하고 있다. 하나는 효문화를 중심으로 한 '신(新)인본주의' 사상을 수립해 우리나라를 문화대국으로 이끄는 일이다.

"고도의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인류의 최대 고민은 '고독'입니다. 버지니아공대의‘조승희 사건’은 결국 인간 고독의 몸부림입니다. 고도의 정보화 사회가 되면서 인간 관계가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관계를 맺는 타인이 부모입니다. 인류 보편적 가치인 '효'가 끊어진 인간관계를 복원하는 첫 단추가 될 수 있습니다."

홍 총재가 주창하는 '신 인본주의'는 효사상을 중심에 두고 양축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장점을 취하는 형태다.

"효용가치로서는 자본주의를 능가할 것이 없고, 분배의 정의와 공동체의식을 세우는 데는 사회주의가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효사상으로 끊어진 인간관계를 복원하고 양 측에 장점을 취하자는 게 신인본주의의 골자입니다."

홍 총재가 주장하는 '효'는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한 미래지향적 효"다. 과거 효행의 표상으로 여겨졌던 '자식의 희생'이 아닌 '자식이 잘사는' 효라는 얘기.

"과거엔 부모를 위해 일신을 바치는 것을 효행이라고 했는데, 자식의 희생은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슬픈 이야기' 밖에 되지 않습니다. 부모는 자식이 잘되면 자식보다 기뻐합니다. 자식이 성공을 하고 존경을 받아 부모를 기쁘게 해 주는 것이 현대사회에선 최고의 효행이 될 수 있습니다."

홍 총재가 고민하는 또 한 가지의 문제는 우리나라의 '과거사'다. 그는 '우리의 과거사 어떻게 볼 것인가'(가제)라는 제목의 저서를 집필 중이다. 일제시대 우리나라 지식인 전체를 부정하는 현 정부의 과거사 청산 작업에 대한 반작용이다.

"현 정부에서 친일반민족행위를 규명한다며 친일파 명단 4만2,000명을 만든다고 하는데, 이는 문맹률이 95%에 달했던 당시의 지식인 전체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는 한일합방 당시 '조선의 지식인과 민중이 원해서 합방을 한 것'이라고 주장한 일본의 논리를 뒷받침해 주는 것이지요. 일제시대 우리 지식인들은 '역할분담'을 했습니다. 중국으로 망명해 해방투쟁을 한 지식인과 국내에 남아 교육사업 등을 하며 후일을 준비한 지식인들이 있었지요. 2차 대전 이후 독립한 140개 국가 중 우리나라와 같은 발전을 이룩한 국가는 없었습니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일제시대 우리 지식인들의 '역할분담'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홍 총재는 따라서 "민족을 팔아서 개인의 영달을 추구한 을사오적, 한일합방으로 작위를 받은 자 등 수백 명은 친일파로 매도돼야 하지만, 당시 지식인 대부분을 매도하는 것에는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제시대 지식인의 '역할분담'을 설명하면서, 일제 말 학병을 권유한 육당 최남선 선생을 예로 들었다.

"최남선 선생은 조선의 청년들이 학병으로 가서 근대 국가 건설에 필수적인 '군사학'을 배워오길 바랐습니다. 일제는 태평양전쟁 초기까지 조선의 청년들을 징집해 가지 않았습니다. 조선의 청년들이 군사학을 배워 총부리를 자신들에게 돌리는 게 두려웠던 거지요. 그런데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니까 어쩔 수 없이 우리 청년들을 징집한 것이고, 선생은 될 수 있으면 장교로 가 이 기회를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홍 총재는 현재 이러한 주장을 담은 '우리의 과거사 어떻게 볼 것인가'와 효사상에 대한 책을 집필 중이다. 그는 "나라의 과거사 청산 작업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어 국학자인 내가 죽기 전에 이를 입증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집필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신하영 기자 (press75@unn.net) | 입력 : 07-05-24 오후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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