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이사장은 지난 5일 고려대 개교 102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이필상 전 총장의 논문 표절 사건은 본교의 침체가 아닌 도약을 위한 내부조정이었다”라며 “이와 함께 총장 선출에 있어 재단의 총장 임명권 정착이 필요함을 보여준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현 이사장의 이러한 발언은 지난 2월 9일 이사회에서 ‘총장선출제도 개선 방침’을 표명한 이후 3번째에 해당한다. 지난 2월 이 총장 사표수리 때와 3월 한승주 총장서리 임명식 때는 ‘임명제’에 대한 당위성에 초점을 맞추더니, 이번에는 아예 ‘이사장직’을 걸고 나왔다. 현 이사장이 임명제를 주장하며 점차 발언 수위를 높여가는 것에 대해 고려대 안팎에서는 향후 제도개선 논의에서 주도권을 선점하려는 포석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고려대의 현행 총장선출제도는 지난 2002년, 고려대가 총장 선출을 둘러싸고 내홍을 겪은 후 마련했다. 당시 김정배 14대 총장을 연임시키려는 재단의 의도가 구성원 반발에 직면해 좌절됐고, 같은 해 6월 김 총장이 사임한 뒤 ‘총장선출제도 개정위원회’를 구성, 6개월간의 논의 끝에 지금과 같은 제도를 마련했다.
현재의 총장서리 체제를 최대 1년이라고 할 때, 지난 2002년처럼 선출제도 개정위원회를 구성하려면 지금쯤은 이를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최소한 여름 방학 중에는 개정위원회가 구성돼 논의를 시작해야 내년부터는 새로운 총장이 학교를 이끌 수 있다. 따라서 개정위원회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재단이 주도권을 선점하고, 나아가 제도 개선을 재단이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가려는 것이 이사장의 의도가 아니냐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
향후 논란의 방향을 예측할 수 있는 열쇠는 ‘과연 개선의 폭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점이다. 고려대의 총장 선출방식은 총장추천위원회(총추위)에서 최종 후보자를 선출한 뒤, 재단이 이 중 한 명을 임명하는 방식이다. 다만 총추위에서 후보자를 선출하기 전 교수들이 네거티브 방식의 예비심사를 실시해 부적격자를 걸러내고 있다. 재단은 최소한 이 부분에 대한 폐지를 원하는 것으로 읽힌다.
교수의회의 예비심사 절차에 대해서는 교우회와 직원노조도 입장을 같이한다. 그러나 재단이 총추위를 통한 간선제까지도 부정할 경우에는 구성원 반발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강영선 대학노조 고려대지부장은 “재단에서 생각하는 방식이 총추위를 없애고 이사회가 일방적으로 총장을 임명하겠다는 것이라면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현승종 이사장은 “총장 공모를 통해 외부인사 영입이 가능토록 하고, 재단 산하 총장선임위원회를 구성해 지원자 중 한 명을 선임하겠다”며 사실상 ‘총추위 폐지’를 시사했다.
이에 한 법과대 교수는 “이필상 총장 사태는 총장선출과정에서 검증절차를 강화해야 하는 문제지 임명권의 문제는 아니다”라며 “현행 제도에서도 외부인사 영입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밝혔다. 향후 제도 개선을 둘러싸고 고려대 구성원 간 갈등의 조짐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