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인종으로 구성된 미국사회는 다행히도 대중이 조군의 국적에 대해 주목하지 않도록 주의를 분산시켰다. 조군의 사건이 터졌던 17일 직후에는 국적의 문제가 대두되는 듯 한 보도태도가 감지되었었다. 예를 들자면 조군의 인종과 무고한 피해자들의 인종을 대비시켜 보도함으로써 인종의 문제가 대두되는 듯 보였다.
학술적으로 뛰어난 업적을 이루었던 유태인 교수, 가난했지만 미국으로 건너가 훌륭한 연구업적을 이룬 인도인, 기숙사 사감으로서 조군의 두 번째 희생자가 되었던 흑인의 헌신적인 봉사활동 등, 가해자와 피해자의 인적 사항들을 중심으로 보도가 이루어졌었다. 하지만 이 같은 보도태도의 파장효과를 염려한 여러 가지 지적들이 대두되었고 결국에는 총기를 포함한 폭력에 대한 사회 전체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쪽으로 주 흐름이 이동하였다. 대신 조군의 엽기 행각에 대하여서는 거의 개인적인 책임론으로 일관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어릴 때부터 드러난 조군의 괴이한 성벽, 사회관계가 단절된 외톨이 생활, 그가 작성한 시나리오의 폭력성, 방화와 스토킹을 포함한 그의 범죄적 행태, 범행 도중 NBC에 보냈던 비디오테이프에서의 경악할만한 반사회성 등 철저하게 이번 사건을 조군 개인의 책임만으로 몰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데이비스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기질귀인이라고 지칭한 바 있다. 즉 누구에겐가 특별한 일이 벌어지면 그런 일은 행위자의 내적 기질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므로 나에게는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는 것이다. 조군에 관한 언론보도의 태도를 가만히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조군 주위의 환경적 이유보다는 조군의 정신장애나 성격적 요인으로 총기난사사건의 발생 원인을 지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조군의 사건이 다만 먼 나라에서 일어난 반사회적 편집증 환자의 일만일까? 어려운 타국생활을 조금이라도 해 본 사람, 직장이나 학교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유 없이 따돌림을 받아보았던 사람, 사업에 실패를 하니 누구도 따스한 손을 내밀지 않았던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조군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안타까워 할 이유가 있다. 영어 한 마디 못하는 타지에 던져진 가난하고 꼬질꼬질한 동양인 아이에게 거대한 체구의 백인 아이들은 위협적인 존재였을 것이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평가가 이루어지는 학교 상황은 아이들에게 잔인하다. 의사소통도 자유롭지 않은 조군에게는 이 같은 낯선 생존경쟁이 너무나 버거웠을 것이다. 친구들로부터 비웃음을 당하느니 차라리 세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나만의 은밀한 곳에 숨어 지내자고 결심했을 것이고, 그것이 유일하게 자존심을 지키는 길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인간의 상식적인 가치관은 사회적 관계를 통해 입력된다.
이와 같은 관계의 단절은 조군만은 괴이한 세계를 만들어냈을 것이고 그곳에서 조군은 본인 외에는 아무도 침범하지 못하는 절대 군주의 모습으로 일시적 평온을 누렸을 것이다. 하지만 바깥세상은 그를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았고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개입하고 간섭하고 번잡하게 하였다. 친구들에게 성추행범으로 몰리기도 했으며 교수로부터는 정신장애로 인한 위험인물로 지목받기도 하였다. 어릴 때부터 아무도 신뢰하지 못했던 그는 누구에게도 자신을 열어 보이지 않았고 결국에 가서는 혼자만의 세계에만 존재하는 왜곡된 선악판단을 다중살인이라는 끔찍한 형벌로서 자신을 무시하고 경멸하였던 자들을 향해 분출하였다.
하지만 이 모든 조군의 행적은 근본적인 오해에 기인한 것이며 그를 그렇게 오해와 망상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 원인은 생존경쟁과 무관심으로 일관하였던 그의 어린 시절 환경적 요인에 있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는 혹여라도 조군의 입장에 처한 우리 사회의 외톨이들은 없는지 한편으로 걱정하고 있다. 당장 오늘에라도 내가 속한 조직의 구성원 중 소통으로부터 단절된 자가 없는지 살펴보는 일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