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사립대가 국립대 보다 훨씬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러지 못해 안타깝다”며 “인제대를 최고의 사립대로 만드는 게 남은 사명”이라고 밝혔다. 백 이사장이 은퇴를 고려할 만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쉬면서 일한다”는 마음으로 손에서 일을 놓지 못하는 이유다.
정신적 지주였던 큰아버지 백인제 박사가 설립한 백병원과 그의 뜻을 이어 만든 인제대가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상황을 감안하면, 그에게 은퇴라는 말은 다소 어색하기만 하다.
백 이사장은 30년 역사의 인제대를 이끌어온 대학 경영자로,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쓴 소리를 쏟아냈다.
그는 “정부의 지나친 간섭과 규제는 하루빨리 풀어야할 문제”라고 지적하고, “정부가 사유화에 대한 규제만 하다 보니 자율권을 침해하고 있는데 교육부는 최소한의 감사 정도의 기능만 수행하면 된다”고 말했다.
백 이사장은 최근 ‘영원한 청년의 이름으로’(한길사)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출간했다. 그는 이 책에서 평생 백병원과 인제대를 향한 일편단심으로 걸어온 길에 대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고 있다. 그동안 보살피지 못했던 가족과 친구, 이웃 등 주변을 돌보겠다는 앞으로의 계획도 고백하고 있다.
지난 4일 서울백병원에서 백 이사장을 만나 그의 80년 외길인생과 교육철학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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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지 이인원 회장과의 대담 모습. |
설립자로서 오늘날 인제대에 어느 정도 만족하나.
"아무래도 지방이라는 지리적 여건 때문에 목표만큼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설립 당시나 지금이나 지방 대학으로서 어려움이 없지 않다. 하지만 우리 대학의 구호인 ‘민족을 위한, 세계 대학을 만들자’는 목표를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사립대가 상위권을 점유하는 비율이 높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인제대도 국립대를 능가하는 민족의 사학, 진정한 사학이 되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다."
우리나라 사립대가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정부가 대학의 사유화를 규제하는 데만 중점을 두다 보니 자율권이 제한돼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과감하게 대학에 자율권을 주고 대학 운영자들의 불법적인 행위는 엄격히 처벌함으로써 발전적인 방향으로 유도해야 한다. 3불, 4불이라는 말이 나온 것부터가 규제라고 생각한다. 대학은 완전한 자율화를 통해 발전을 위한 동력을 모색하고 정부는 감시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재단의 지원이 많은 대학으로 알려져 있다. 어떻게 운영되는지.
"지방 소재 대학인만큼 등록금을 수도권처럼 비싸게 받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백병원이 학교 재단의 한 수익기관으로 돼 있어서 병원에서 잉여금이 생기면 대학에 지원하고 세금 부담도 덜고 있다. 학교 운영비 중 등록금은 40% 정도를 차지하고 나머지 60%는 재단에서 지원한다. 또한 등록금 예고제를 20년간 꾸준히 실시해오면서 학교와 학생 간 신뢰도 두텁다. 등록금으로 분쟁이 생기지 않는 유일한 대학이다."
초일류병원을 지향하는 해운대 백병원 개원을 앞두고 있다. 준비 상황은.
"해운대 백병원은 서울, 부산, 상계, 일산, 동래백병원의 규모를 뛰어넘을 것이다. 부산시의 적극적인 배려로 개원 후 3년 후부터 20년 동안 설립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해운대 신시가지 입주가 10년이 넘었는데 종합의료부지에 들어가는 것을 병원들이 꺼려해 우리가 사업을 맡게 됐다. 부산백병원이 부산시민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어 개원 후 좋은 성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노무현 기념관 설립 사업이 학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데.
"기념관 건립은 정치적 의미가 전혀 없는 사업이다. 노 대통령이 김해 출신으로서 언젠가는 이 지역의 타 대학이나 기관에서도 충분히 추진 할 수 있다. 다만 대통령에 대한 기록을 역사에 남기고 후대에 가르침이 되도록 하는 것은 대학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외국에서도 대학들이 ‘프레지던트 라이브러리’를 많이 운영한다. 노 대통령에 대한 평가와 상관없이 기념도서관은 필요하다고 본다. 계획대로 추진할 방침이다."
8.15해방이전 설립된 사립병원 중 유일하게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비결은
"오직 병원 경영을 위한 한 길만 보고 왔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예전에 목조건물이던 서울백병원을 현대식 건물로 재건축 할 때가 가장 고생스러웠던 것 같다. 앞 뒤 주변도 돌아보지 않고 이 길만을 걸어왔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앞으로는 의술이 갖고 있는 봉사의 의미를 살려 이웃을 위해서 의료사업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또 가족, 친구 등 주변도 돌아보고 함께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사회에 전하고 싶은 말은.
"우리나라에서는 전반적으로 의료계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우리처럼 순수하게 ‘인술제세, 인덕제세’의 뜻을 실천하는 곳이 있다는 점도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백낙환 이사장은=1926년 9월27일 평안북도 정주군에서 태어났다. 백 이사장은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를 여의고 큰 아버지이자 당대 명의인 백인제 박사 슬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백인제 박사의 권유로 서울대 의대에 진학한 그는 1950년 큰아버지가 납북된 뒤 병원재건에 착수, 무너져가는 백병원을 지금의 규모로 성장시켰다. 서울백병원에 이어 부산, 상계, 일산, 동래백병원을 차례로 개원하고 1979년 인제대를 설립했다. 1989년 종합대학으로 승격한 인제대의 총장직을 맡아 의사, 경영인, 교육자의 1인3역을 성공적으로 이뤘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1983년 국민훈장 목련장을, 2002년 무궁화장을 받았다.
※대담:이인원 본지 회장, 사진:한명섭 기자, 정리:부미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