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26일 2008학년도 대학입시와 관련해 “대학들이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신 1~2등급 만점 처리를 고수하고 있는 서울대에 대해서는 “자존심 때문에 그대로 가겠다고 한다면 정부도 어쩔 수 없이 상응하는 조치를 면제하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영빈관에서 전국 4년제 대학 및 전문대 총·학장 152명과 토론회를 개최했다. 노 대통령은 내년 고등교육 예산을 1조원 증액하겠다고 당근을 제시하면서 2008학년도 대학 입시와 대해서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는 대학 자율도 규제받을 수 있다”고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자존심 때문에 그러는 모양인데…” “입시안 안 바꿀 것”
이날 토론회의 주제는 ‘고등교육의 전략적 발전을 위한 방안’이었지만 최근의 내신 비율 확대 논란 탓인지 이야기는 자연스레 대학입시로 흘렀다. 노 대통령은 “2008학년도 대입제도는 2004년 당사간에 모두 합의가 된 것”이라며 “국민적 합의로 수용된 것은 그 기본이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면 합의를 해서 깨야지 일방적 밀어붙이기로 깨면 약속 자체로서 옳은 일이 아니고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며 “아무도 대학 자율을 반대하는 사람은 없지만 국가 공익을 위해 대학의 자유도, 자율도 규제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노 대통령은 “(대학들이) 지도적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이기주의를 버려야 한다”며 “대학이 함께 가려는 통찰력 있는 전략을 제시하지 않으면 그 사회에서 지도적 역할을 할 수 없고, 그러면 공무원들에게 규제를 받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은 특히 서울대에 대해서는 이장무 총장을 앞에 두고 “자존심 때문에 2009년부터 새로 해보자 이렇게 하는데 그러면 어쩔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있겠느냐만 정부에선 어쩔 도리 없이 상응하는 조치를 배제하기 어렵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하지만 이 총장은 토론회가 끝난 뒤 “서울대 올해 입시안은 지난 4월 이미 확정, 발표했다”며 “교과목별 내신 1~2등급에 만점을 주는 방안은 유지할 것”이라며 기존 입장을 고수하겠다고 버텼다. 이 총장은 “일부 사립대의 입시안과 서울대의 입시안은 다르다”라며 “이번 내신 갈등은 사립대의 조속한 결단이 해결의 실마리를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회균등할당제 도입’ 총장들도 반응 엇갈려
김신일 교육부총리는 이날 ‘고등교육 발전 방안’을 발표하면서 “기회균등 할당제를 2009학년도부터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농어촌, 실업계고교, 특수교육대상자 등 사회적 배려 대상자를 위한 정원 외 특별전형을 통합하고 저소득층과 다문화가정 자녀 등으로 확대하겠다는 것. 기회균등할당제로 입학한 기초생활수급자 자녀와 차상위계층 이상 저소득층 학생에게는 정부가 장학금 등을 지원한다.
하지만 총장들부터 의견이 엇갈렸다. 박철 한국외대 총장은 “서울 소재 고교에서 상대적으로 우월한 교육을 받은 학생과 낙후된 지역 학생이 수능에서 동일 등급을 받았다면 잠재력 측면에서 낙후지역 학생이 더 우수하다고 생각한다”며 “국민 어느 한 사람도 교육 균등의 기회에서 소외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도입을 적극 환영하다”고 말했다.
이장무 서울대 총장은 “서울대의 경우 이미 지역균형선발 등으로 소외계층 등 다양한 학생들을 선발하고 있지만 학생들의 성적이 정시모집 합격자에 비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라며 “급격히 실시하기보다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면서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부구욱 영산대 총장은 “이미 고교 졸업생의 대학 진학률이 82%에 달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회균등할당제 도입은 신중하게 검토돼야 한다”며 부정적 의견을 보였다. 부 총장은 특히 “정원 외인 농어촌 특별전형을 만들 때도 학생들이 농어촌 대학에 지원하길 기대했지만 오히려 대도시 대학으로 집중되는 결과를 낳지 않았느냐”며 “수도권 집중 폐해를 가중시키는 데 일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등교육 예산 1조 증액은 환영…더 늘리고 세제 혜택 확대해야
내년 1조원을 시작으로 현재 3조7,000억원 규모인 고등교육 예산을 순차적으로 늘리겠다는 지원책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더 확대돼야 한다는 주문이 많았다.
서거석 전북대 총장은 “우리나라 고등교육 예산이 GDP 대비 0.6%인데 반해 OECD 평균은 1.1%”라며 “1조원 증액은 부족하다. 지금의 두 배로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총장은 “정부의 의지가 중요하고 특히 대통령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종량 한양대 총장은 “고등교육에서 사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75%를 차지하지만 국가 보조는 4%에 그치고 있다”며 “선진국은 보통 7~8%에서 12·13%까지 확대하고 있는 만큼 우리도 10%까지는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창영 연세대 총장은 “턱없이 부족한 정부지원, 미흡한 기부문화 등으로 대학은 등록금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며 “100만원 이하 소액기부에 대한 세액공제를 확대하고 대학이 교육연구시설을 지을 때 공사비 10%를 매입세로 내야 하는 규제 등을 완화해 달라”고 건의했다.
권명광 홍익대 총장은 “총액지원에서 특정프로그램 지원으로 바뀌면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오지 않았는가 생각한다”며 “정부의 재정 지원은 전 대학에 일괄 지원하는 방식과 사업별 지원 방식을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청와대 토론회에는 이장무 총장을 비롯해 공정자 남서울대 총장, 김문규 부산교대 총장 등 4년제 대학 총장 142명과 한숭동 대덕대학 학장 등 전문대 학장 10명 등 전국의 총·학장 152명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