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아씨의 학력위조 사태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세 가지로 나타난다. 우선, 신정아씨가 간판과 학벌을 중시하는 대한민국의 사회 풍토를 통렬히 조롱하고 한국 사회와 우리의 의식의 치부를 드러냈다고 느끼면서 일종의 씁쓸한 통쾌함을 느끼는 것이다.
두 번째는 희대의 사기를 가능케 했던 배후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다. 뭔가 외압이 작용했을 거라고 판단하면서 학력과 간판의 문제 보다 권력의 남용이라는 문제를 신정아씨 사건의 핵심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입장 모두 어느 정도 공감한다. 하지만, 나는 무엇보다 간판에 대한 의존, 학력 조작, 외압 등 문제를 넘어 이번 사태의 배후에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신분 차이’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지난 몇 달간 별로 달라진 것이 없지만, 내 직업은 비전임 시간강사에서 전임교수로 바뀌었고, 그에 따라 사람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시간강사로 지낼 때는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는다면 그 또한 군자가 아닌가?”라는 공자님의 말씀을 되뇌어도 비정규직 시간강사에 대한 무시 때문에 받는 상처를 피할 수 없었다.
특히, 교수 임용과정에서 겪었던 상처는 무척 컸다. 명문 대학들조차 교수 임용 과정에서 지원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많지만 배려는 거의 없었다. 몇몇 학교는 해당 전공 지원자들 중 아무도 뽑지 않기로 결정한 후에도 지원자들에게 사실 통지도 하지 않았다.
같은 학교 동일한 채용공고가 다시 나온 것을 보고나서야 임용지원에서 떨어졌다는 것을 알았던 적도 있었다. ‘도대체 학교 당국이나 교수들은 지원자들을 얼마나 하찮은 존재로 생각하는가?’라고 분개했다.
무시당하고 있다는 느낌, 혹은 아무 존재도 아니라는 느낌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분개하고 무시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친다. 그래서 무시당한 경험이 있는 많은 사람들은 간판을 조작하고 외압을 행사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회적 지위를 확보하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해 동병상련을 느끼고 측은한 마음까지 가진다.
물론 그런 측은지심이 조작과 과장, 위선을 정당화한다거나 모든 사람들이 그런 부정한 방법을 동원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이 무시당하거나 차별당한다고 느끼는 사회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신정아씨의 학력 위조 사건은 우리 대학이 복잡한 임용 절차를 거쳐 교수를 임용하고 또 그 과정에서 엄청나게 많은 제출 서류들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무색하게 했다. 사실 미국은 지도교수 추천서만으로 졸업예정자도 학위증 없이 얼마든지 교수로 임용된다.
형식적이기만 한 임용 절차는 좋은 교수를 임용하는데 도움이 되기보다 학교가 책임추궁을 피하기 위해 증빙서류를 만드는 요식행위로 전락한다. 그리고 동국대 사례에서 알 수 있듯 그런 요식행위는 조롱당하기 십상이다.
대학이 비정규직 박사를 무시하는 것은 비정규직 박사에 대해 국가의 보호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 이 문제는 비정규직 박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비정규직이 정규직과 거의 동일한 일을 하면서도 무시당하고 차별받는 조건에서 정규직이 되는 것은 신분상승이고, 신분상승의 칼자루를 쥔 대학이나 기업이 임용이나 취업지원자에게 때로는 굴욕을, 때로는 돈을, 때로는 굴종, 때로는 불공정 계약을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현대 사회에서 신분제도라니! 이런 신분제도는 분명 철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