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재경부가 도입을 주장했지만 예산 부족을 이유로 교육부의 반대에 부딪힌 등록금 후불제. 재경부는 취업이 보장되는 경영·법학·의학전문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우선 실시하겠다고 한발 물러섰지만, 저소득층을 배려하는 도입 취지와 어긋난다는 이유로 반발을 사고 있다.
결국 등록금 후불제의 시행 여부는 재원 마련이 가능한지에 달렸다. 지난 2005년부터 등록금 후불제 실시를 주장해온 전국교수노동조합(이하 교수노조)은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이하 참교육학부모회)와 함께 시뮬레이션을 통해 실현 가능성을 검토하는 자리를 22일 서울 민예총 문예아카데미에서 가졌다.
▲22일 민예총 문예아카데미에서 열린 '등록금 후불제의 올바른 도입을 위한 대토론회'에 참가한 참교육학부모회 박이선 수석부회장, 강남훈 교수노조 사무국장, 김상곤 한신대 교수, 박정원 교수노조 부위원장(왼쪽부터).
교수노조는 김신일 교육부총리가 “등록금 후불제 시행에 연간 12조원의 기금이 필요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 데 대해 “GDP 대비 0.4%인 현재 고등교육 예산 수준이 그대로 유지될 것이란 전제 때문에 그렇다. 2006년도 기준 OECD 평균인 1.1% 수준을 확보해 지원하고, 등록금 예산을 국채로 발행할 경우 충분히 도입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교수노조가 주장하는 등록금 후불제 도입의 대전제는 GDP 대비 1.1%(현재 약 9조 3천억원)의 고등교육 재정 확보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를 비롯한 각 당 후보가 이를 공약으로 내건 점을 근거로 꼽았다. 핵심은 졸업생 개인의 상환과 함께 추가 확보된 고등교육 예산 투입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차기 대통령 임기의 중간시기인 2010년이나 말기인 2012년까지 고등교육재정 9조 3천억원을 확보하고, 1.1%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매해 0.5%씩 늘릴 경우 각각 2015년, 2018년에는 누적 채권이 없어진다는 설명이다.
이같은 강남훈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의 시뮬레이션은 등록금 후불제 시행시 졸업생이 20년간 월 10만원씩 상환하고 물가상승률만큼의 명목이자(실질이자율 0%)만 지불하는 것을 가정했다. 또 등록금 후불제 소요 예산 12억원 중 학비감면 형태의 장학금 3조원 지원, 입학생의 30% 등록금 선불(2조 7천억원)을 제외해 한해 필요 예산을 6조 3천억원으로 잡았다.
▲국채 이자율 5.6% ▲GDP 성장률 4% ▲등록금 상승률=물가상승률+1% ▲청년실업률 8% ▲졸업 후 2~3년 내 대부분 취업 등도 전제조건으로 제시됐다. 강 교수는 “정부 부담 없이 개인에게만 실행 비용을 상환토록 한다면 등록금 후불제는 요원하다”고 강조했다.
박정원 상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등록금 후불제 도입시 국민소득의 4.2%인 36조원이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등록금 지불비용인 9조원이 사실상 가계 소득에 보전되는 효과를 감안,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일반적 ‘한계소비성향’ 지수(0.75)를 적용해 계산한 것이다.
이에 따라 박 교수는 평균 소득세율 20%에 해당하는 7조 2천억원이 세금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해 9조원(12조원 중 장학금 3조원 제외)을 정부가 지원해도 이같이 상쇄 효과가 크기 때문에 실질적 재정 부담은 대폭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는 정부가 부담하는 액수가 졸업생의 상환액을 훨씬 웃도는 맹점이 있다. 수익자 부담 원칙에 근거한 현행 등록금 제도의 개념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다. 또한 GDP 대비 고등교육재정 1.1% 확보가 ‘공약(空約)’이 된다면 등록금 후불제 시행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진다. 시뮬레이션의 전제와 개념이 정교하게 분석, 논의돼야 하는 이유다.
토론회에 참석한 임해규 한나라당 의원<오른쪽 사진>은 “이명박 대통령 후보도 등록금 후불제와 비슷한 취지의 ‘소득연계 학자금대출제도’ 공약을 계속 검토하고 있다. 기조와 방향에 동의하지만, 다양한 조건과 전제를 감안해 여러 재정 확보 모델을 제시해야 공론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임 의원은 “국회에서 의뢰한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의 관련 연구 결과에 의하면, 2026년까지 국채 규모가 계속 늘어난다. 전제 조건의 문제점을 보완·조정해 간극을 줄여야 현실적 대안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등록금 후불제 시행 범위는 MBA·로스쿨·의전원 학생보다는 중·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우선 적용 후 확대해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민주노동당 송경원 정책위원은 “강 교수와 송 교수의 시뮬레이션 결과 차이는 정부 부담을 어떻게 산정했는지의 차이가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채권 발행 형태의 등록금 후불제와 민노당이 주장하는 단계적 무상교육은 기본 전제가 같다. 어느 쪽을 택하느냐의 차이”라며 “정부 재정 확충을 전제로 한 교육부의 전향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참교육학부모회 박이선 수석부회장은 “학부모 입장에서는 등록금 부담을 피부로 느낄 수밖에 없다. 86% 이상의 국민들이 등록금 후불제 도입에 찬성한다는 설문 결과가 이를 잘 보여준다”면서 “등록금 후불제나 상한제, 단계적 무상교육, 학자금 저리 융자 등 제시된 대안 중 무엇이 됐든 ‘현실화’ 시키는 자세가 절실한 때”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