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데모사건 개요 : 구국투쟁위원회 위원장 김재하(법대), 부위원장 이경우(법대), 박정훈(정경대), 이명박(상대)…'
고려대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경찰 문건 '고대 데모 사건 개요'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고려대 상대 재학시절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6ㆍ3사태의 개요를 간결하게 보여주고 있는 자료다.
당시 군법무관을 지낸 이기창 변호사가 기증해 지난 2005년부터 고려대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고려대를 관할하던 성북경찰서가 1964년 6월 17일 작성한 것으로 돼 있는 이 문건에는 당시 박정희 정부가 추진하던 한일국교정상화 회담에 대해 '굴욕적'이라며 봉기한 고대생들의 움직임이 3월24일부터 6월3일까지 일지식으로 정리돼 있다.
3월 24일 봉기와 국회의사당 점거에서 5월 25일 궐기대회, 6월 1일 데모 좌절, 6월 2일 데모, 6월 3일 국회의사당 앞 점거시위까지가 당시 경찰에서 파악한 '고대 데모 사건'의 개요다.
이 문건에는 시위 주도단체로 지목된 '구국투쟁위원회'의 조직도가 그려져 있는데 당시 상대 4학년으로 단과대 학생회장이던 이명박 당선자는 법대, 정경대의 학생회장과 함께 부위원장으로 나와 있다.
또 최장집 고려대 정외과 교수와 김덕규 전 국회부의장 등도 데모 주동인물로 표시돼 있다.
한일회담 반대 투쟁으로 시작된 당시 고려대 학생운동은 3월 24일 본격적으로 힘을 결집하게 된다. 이날 이 당선자는 "종주국 없이 한번 살아보자. 이것이 우리의 피맺힌 절규다. 일제의 망령을 박멸할 때까지 우리는 영원한 투쟁의 대열에 참여할 것을 여기서 엄숙히 선언한다"로 끝나는 선언문을 대표로 낭독하기도 했다.
이후 이 당선자 등의 제의로 5월31일 박정희 군사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며 구국투위가 결성됐고 이를 발판으로 6월3일 국회의사당을 점거하는 대규모 시위로까지 발전한다. 이 시위에는 고려대생 외에 서울 18개 대학 1만5천여명 등 총 3만명 가량이 참가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정부는 3일 오후 6시30분 계엄령을 선포하고 시위 진압과 주동자 검거에 돌입했으며 이 당선자는 피신 끝에 6월15일 이경우 당시 법대 회장과 함께 검거돼 내란죄로 서대문형무소에서 6개월간 복역하게 된다.
고려대 박물관의 김상덕 기록자료과장은 "1960년대 학생운동 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경찰이라는 공공기관에서 작성된 자료라는 점에서 매우 의의가 있는 문건"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현재 고려대 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고대신문 창간 60주년 특집전에는 6.3사태 주도자로 구속된 이명박 당선자의 1차 공판 기사도 전시돼 있다. '공소 사실을 부인'이라는 제목이 달린 1964년 9월26일자 고대신문에는 수의를 입은 이 당선자의 사진도 함께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