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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괴(怪)’가 많아야 ‘큰 배움터(大學)’다
최영록 성균관대 홍보전문위원

‘괴(怪)’란 괴짜를 말한다. 기인(奇人)일 수도 있고, 어느 한 분야에 미친 사람일 수도 있겠다. 이른바 별난 사람, 방외지사(方外之士)나 고수(高手)도 다되겠다.

70년대 캠퍼스에는 흔히 말하는 괴들이 많았다. ‘명륜동 5괴’ ‘안암골 3괴’ 이런 식으로 특정한 교수들을 빗대 불렀다.

한 분야만 평생 천착하는 딸깍발이 교수나 행동거지가 괴팍하고 사회성은 젬병인 ‘개똥철학자’들도 그렇게 불렀다.

당시 유명한 괴가 자칭 ‘국보’ 양주동교수였다. 지금으로 치면 좌충우돌 ‘우주보’ 도올 김용옥씨도 ‘대괴’라 하겠다.

평생 헤진 가죽가방 하나로 버틴 철학교수는 집하고 학교밖에 몰랐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수업이 있다. 엘리어트의 ‘황무지’(The Waste Land)를 종강 때까지 다 읽지 못했다. 시험이 끝나고 방학이 시작됐는데, 교수님이 수업을 강행했다. 날씨가 너무 추워 장작난로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문학을 이해하려고 골몰하던 그 풍경이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괴가 많아야 큰 배움터’라는 제목은 무엇을 뜻하는가. 세상이 획일화될수록 생활은 각박해진다. 괴들이 없는 상아탑과 경쟁사회를 생각하면 앙꼬 없는 찐빵 같지 않는가.

지식정보사회일수록 대학에는 괴들이 많아야 한다. 나는 가끔 주변의 괴들을 떠올리며 혼자 빙긋이 웃곤 한다. 그분들의 삶은 팍팍한 내 삶의 활력소가 되기도 하니 늘 반갑고 고맙다

교육이 먼저냐? 연구가 먼저냐를 따질 것 없이, 대학에는 마땅히 괴가 많아야 한다. 융통성 하나 없이 오로지 공부에만 몰두하는 교수들을 보면 어딘가 꽉 막힌 듯 답답해 보이다가도 존경스럽다.

21년 동안 ‘입실수도(入室修道)’를 하고 있는 교수님이 있다. 그는 수업시간을 빼놓고 월요일 오전부터 토요일 오후까지 연구실에서 꼼짝하지 않고 연구에만 매진한다. 여름방학에는 21년째 석박사과정의 제자들과 함께 ‘한계돌파 지옥세미나’라 불리는 하드트레이닝을 4주 동안 254시간이나 실시한다. “연구 때문에 밥 먹을 시간도 없다”는 말을 달고 다닌다.

평생 영문학만 공부하고 가르치다 은퇴한 명예교수가 있다. 한때 화제가 된 ‘영한사전 비판’ ‘문화의 오역’이 바로 그것인데, 번역의 오류와 사전의 단어 설명이 미흡하다는 것을 미주알고주알 지적한 역저이다. 사전과 번역서 오역을 쌀의 뉘처럼 골라내기 시작한 게 40년이 넘었다.

유학동양학부의 교수 한 분은 사서삼경을 20년에 걸쳐 혼자 강설한 책을 펴냈다. 시경을 강설하려다 한계를 느끼고 시를 공부하여 시인이 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중문과의 교수 한 분은 유례가 없는 ‘우리말 한자어 속뜻사전’을 사비를 털어 발간했다. 우리말 한자어 5만 8천개의 속뜻을 12년에 걸쳐 일일이 해설하며 학습을 도운다.

막역한 벗도 학문의 길을 걸었다. 문학사(영문학), 언어학 석사, 중문학 박사. 30대 중반쯤 어렵사리 교수가 됐다. 복층빌라 2층은 중문도서관을 방불했다. 사전류와 중국어학 몇 천권, 개가식 서가는 몇 겹을 둘렀다.

그도 둘째가라면 서운할 ‘공부선수’다. 연구년에는 시애틀에서 ‘대체의학대학원’을 다니더니, 최근엔 ‘국제영어대학원’까지 마쳤다.

공부가 그렇게 좋을까. 그의 목표는 허준의 ‘동의보감’을 10년 안에 제 손으로 영역하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내 주변의 ‘괴’들이다. 희한하게도 나는 괴들과 얘기가 잘 통한다. 호불호를 떠나 이런 괴들이 많아야 대학이 대학답고 사회가 윤택해진다고 생각한다.

대학사회조차 천편일률적 사고와 획일화된 행동양식만 존재한다면 얼마나 살벌할까. 나는 괴들이 좋다.

관리자 기자 (gizoong@unn.net) | 입력 : 08-01-07 오후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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