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학의 가장 큰 문제점 중의 하나는 전공학과나 단과대학 사이의 장벽이 너무 높다는 사실이다.
21세기의 학문은 “통섭”으로 대표되는 다학제 간 융합 연구가 점점 중요해 질 것이라는 것이 세계적 석학들의 공통된 예측인데, 우리나라에서 학문을 이끌고 나아가야 할 대학에서는 아직도 전공 사이의 벽이 너무 높아서 융합적인 연구가 어렵다는 것이 큰 약점인 것이다.
특히 이과와 문과의 구분은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되어 우리 사회에 이미 깊이 뿌리박은 전통이 되어 있어서, 이것을 깨는 것은 매우 어려워 보인다.
예를 들어 공과대학 졸업생들이 경영학이나 회계를 배우는 것이 회사에 취직한 후 성공하는데 매우 도움이 되겠지만, 우리나라 공대에서 이 분야를 전공하는 교수를 뽑는 것은 쉽지 않다.
마찬가지로 미술이나 음악에서 첨단 공학적 기법을 이용하는 것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데 큰 힘이 되겠지만 실제로 이러한 분야의 전문가를 뽑는 일은 흔하지 않다.
얼마 전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에서는 경제학 박사이며 일본 와세다 대학 정경학부 교수를 역임한 오종남 박사를 초빙교수로 모셨다. 오종남 박사의 경력을 보면 학부에서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행정고시를 거쳐 경제부처에서 오래 근무하여서 자연과학대학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통계청장을 역임하면서 통계적 기법과 통계자료의 의미를 해석하는 일에 종사하면서 자연대학의 통계학과와 인연을 맺었다.
즉 자연과학으로서의 통계학의 엄밀함에 인문·사회학적인 의미를 덧붙이면서, 통계자료를 단순한 숫자로부터 우리생활에 필요한 정보로 업그레이드시키는 역할을 한 것이다.
오종남 박사는 앞으로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의 초빙교수로서, 이처럼 숫자와 학문으로서의 통계가 앞으로의 우리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과 의미를 학생들에게 설명하는 통계학 강의를 맡을 예정이다.
이것이 바로 통섭의 발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실 학문이 지금처럼 분화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17세기에 근대 수학과 과학의 기틀을 세운 데카르트나 라이프니츠, 뉴턴 등도 자신을 철학자로 생각하고 있었고, 실제로 그 방면의 학문적 업적도 많이 내었다.
그러다가 근대 과학혁명이후 학문이 점차 전문화되면서 현재의 세분된 학문 체계가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학문의 지나친 세분화가 연구 영역을 너무 좁혀서 이런 방법으로는 복잡다단한 현대의 문제를 이해하거나 해결책을 제시하기에 미흡하다는 반성이 생겼고, 이에 따라 최근에는 학제간 연구와 통섭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의 대학들도 미흡하나마 이러한 추세에 따라가려는 노력을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서울대만 하더라도 최근 공과대학에서 안과 의사를 전임교원으로 임용했고, 얼마 전에는 자연과학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소장학자를 인문대학에서 임용한 바 있다.
물론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기업이 시속 100마일로 움직이는 자동차라면 학교는 10마일로 기어가는 부서진 고물 자동차’라고 말한 것처럼, 일반적으로 대학은 조직의 유연성이 떨어져 시대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한다.
하지만 세상이 눈부시게 빨리 변화하고 학령인구도 줄어드는 시대에 우리나라 대학도 이러한 시대 흐름에 부응하지 못하면 낙오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