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가 수능등급제 보완, 학교 교육정보 공개, 3불정책의 실질적 폐지를 포함한 ‘대입 3단계 자율화’ 방안을 속속 내놓고 있다. 차기정부 교육정책의 바로미터가 될 자율화 기조는 정부 규제를 대폭 축소하고 대학에 학생선발 자율권을 주는 것으로 집약된다.
그러나 “대학에 입시자율권을 준다고 교육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란 비판도 만만찮다. 이른바 ‘자율화 대세론’의 실체와 보완점은 무엇일까. 참여정부의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내고 지난해 말 ‘왜 우리 아이들은 대학에만 가면 바보가 될까?’란 책을 펴내 우리 교육의 현실을 비판한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국제대학원)를 23일 만나 ‘훈수’를 들어봤다.
◆"대학자율화 찬성, '대입'자율화는 불안"
“대학에 대한 정부 규제가 많이 없어져야 합니다. 교육부의 불필요한 규제가 너무 많거든요. 자율적으로 풀어주는 게 맞다고 봐요. 다만 대입자율화는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국민적 문제고 사회적 문제이기 때문에 입시만큼은 최소한의 마지노선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 거죠.”
조 교수는 대학의 자율성과 대입의 자율성을 구분했다. 로스쿨, MBA를 비롯한 전문대학원 제도나 BK21사업·누리사업 같은 국책사업의 연구비 지원 등 비입시분야는 정부 개입보다 경쟁원칙과 시장논리의 도입이 필요하지만, 3불정책(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의 폐지 등 입시 자율화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걱정스러운 것은 자율에 대한 준비가 덜 됐는데 자율을 함으로써 치러야 할 대가가 크다는 겁니다. 지금 얘기되는 자율화에 명문대 목소리가 큰 게 특히 걱정됩니다. 명문대가 본고사 부활, 고교등급제 시행으로 가면 막을 방법이 없지 않겠어요? ‘교육의 부도’ 사태가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70년대, 80년대 입시지옥 고통을 반복하지 않을지…”
“지금 자율화를 주장하면서 많이 얘기되는 게 미국 대학인데, 미국 대학은 사실 3불을 합니다. 케네디 대통령 때 소수자 우대정책이 통과돼 대입에 지역별·계층별 할당 원칙이 서있고 내신 50% 이상 반영하죠, 또 본고사도 없어요. SAT 점수화해서 보지도 않구요. 일정 점수 이상이면 다같은 등급을 줍니다. 수능등급제와 비슷한 개념이죠.”
그녀는 대입 자율화의 ‘전제’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미국식 대입을 도입하면서도 자율규제 기능이 확고히 서있는 대목은 도외시했다는 것. 사회의 제도는 미국식인 반면 교육을 둘러싼 사회풍토와 문화는 경쟁 일변도의 일본·중국식이라 괴리가 있다고도 했다.
“인수위도 자율권을 준다 해놓고 본고사는 보지 말라고 ‘규제’하잖아요. 앞으로 정부가 힘 빠지면 대학이 통합형 논술 어렵게 출제하고, 본고사 부활시키지 말란 법이 없어요. 미국 대학이 굉장히 자율화 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이런 확고한 ‘신호등’을 바탕에 깔고 자율성이 유지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입시부터 손대면 안돼.. 순서 바뀐 것"
“대입자율화는 물론 장기적으로 맞는 방향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방향이 맞아도 입시는 교육의 ‘결과’여야 합니다. 입시부터 손대 뭐든지 바꾸려는 나이브한 정책은 안 되는 것이죠. 학교개혁 없이 입시를 손대면 어떻게 되겠어요? 당연히 학교가 못해주는 걸 사교육 시장에서 해결하겠죠. 그러니 공교육을 우선 살려놓은 다음에 입시제도가 변해야 한다는 겁니다.”
조 교수는 “정상적인 공교육을 하면서 대입을 하는 게 진정한 자율성 아니냐”면서 “대입 업무를 이양받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에서 소수 명문대들이 카르텔을 만들 수도 있다. 특히 지금처럼 대학 서열이 확고한 상황에서 자율을 주면 경쟁하라는 게 아니라 독과점을 부추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입자율화의 방향 수정을 강조하기도 했다. ‘3불을 부정하지 않는 자율’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녀는 “물론 언제까지고 정부가 대입에 일일이 관여할 수는 없다. 다만 고교등급제, 본고사가 시행되면 도미노처럼 중학교, 초등학교까지 입시과열 문제가 번질 게 불 보듯 뻔하지 않나. 대입이 대학의 학생선발권 문제만은 아니란 점을 확실히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입자율화는 중요한 실험입니다. 언젠가 한번 겪어야 할 일이기도 하고… 무조건 대학을 못 믿겠다는 게 아니라, 브레이크 없는 자율화의 위험성이 너무 크다는 데 문제가 있어요. 그간의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감 때문에 ‘자율을 주면 달라질 것’이란 희망을 품는 것인데, 그에 앞서 자율화의 실제 내용과 현실타당성을 냉정히 분석해야 합니다.”
“3불은 실패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실패의 주체가 꼭 정부만은 아닌 게, 대학과의 협력이 잘 안 됐던 탓이 크죠. 자율화를 하면 대입정책 실패의 책임이 곧바로 대학에 돌아오게 될 겁니다. 대교협에서 이를 자율규제 한다는 건데, 글쎄요… 협의체인 대교협이 이해관계가 각각 다른 대학들의 입장을 모으기가 쉬울까요.”
◆"대입단순화 바람직.. 내신강화도 함께"
조 교수는 차기정부의 수능 반영과목 축소방안 등 대입 단순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인수위의 방안에서 한걸음 더 나가도 좋다고 본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웬만한 주립대는 몇몇 필수과목만 준비하면 된다. 우리도 아예 필수와 선택을 분리해 수험생 부담을 더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고도 했다.
그녀는 “다만 내신 강화와 함께 가야 한다. 내신을 사실상 무력화하면서 대입을 단순화시키면 모두가 사교육 시장으로 달려가게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미국 대학들이 필수과목만 반영해도 괜찮은 것은 내신이 탄탄히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내신을 강화하면서 수능을 선택으로 가면, 수험생 부담도 줄고 공교육 정상화도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내신 강화란 게 공부 잘하는 학생을 못 뽑는 것이라서, 주요 상위권 대학들이 안 하려고 하는 겁니다. 수능이나 본고사로 뽑겠다는 것도 결국은 공부 잘하는 학생 선발이 목적이죠.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내신을 강화하면 다양한 인재 선발로 이어질 수 있는 거예요. 수시모집처럼 내신 위주로 평가해 다양한 지역의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는 게 필요합니다.”
“우리나라는 굉장히 오래 전부터 성적이 좋은 학생이 좋은 대학 들어가는 게 공정한 것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어요. 대학도 그게 공정한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수능 원점수, 백분위 다 공개하자는 거죠. 그런데 저는 이 개념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획일적 공정성’이 강조될 때 다양성을 지닌 인재의 선발은 요원해지는 거니까요.”
“미국 스탠퍼드대 예를 들어볼까요. 여기는 입학정원 3배수에 달하는 지원자의 SAT 성적(등급제 개념 적용)이 만점이에요. 수능 성적은 최소한의 자격요건으로 보고, 변별력은 특기나 적성 같은 부분에서 찾는 거예요. 미국식 ‘다양한 공정성’이죠. 우리랑 달리 성적 좋은 학생의 입학보다는 능력을 다각도로 평가해 학생을 선발하는 겁니다.”
“내신과 수능 비율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와 같은 논의는 소모적이라는 조 교수는 끝으로 “인수위도 3불과 자율화는 양립불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마지노선인 3불을 스스로 규제할 수 있는 대입자율화가 돼야 할 것이다. 동시에 ‘다양한 공정성’ 개념의 재정립과 인식 확산도 대입정책 패러다임 전환에 필수적일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