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의 발전에 걸맞는 인문학의 발전이 없다면 진정한 선진국을 이룰 수 없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정작 금방 효과를 나타내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인문학 투자는 늘 뒷전으로 밀렸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절박한 시점에서 2007년의 인문학 진흥 사업은 참으로 가뭄에 단비와 같은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작년은 인문학계에 있어 특별한 해였다.
300여억원이라는 사상 최대규모의 ‘인문학 진흥’을 위한 예산이 확보, 학술진흥재단을 중심으로 인문학 진흥 사업이 시행되면서 전국 인문학자들이 열풍에 휩싸이기도 했다.
물론 공모를 통한 사업선정이라는 점 때문에 과정에서 잡음도 꽤 있었고, 선정에서 탈락한 대학이나 연구소 관계자들의 상실감과 허탈감도 컸다. 상당한 후유증도 있었을 것이다.
그같은 과장된 이야기와 엮인 후유증에 편승, 어떤 이들은 인문학 진흥 사업이 “인문학 위기론에 편승돼 급조된 사업”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게다가 “돈 쏟아 붓는다고 인문학이 진흥되느냐”는 식의 거친 말로 매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제대로 된 사실을 모르는 즉흥적이고 무책임한 발언이다. 인문학 진흥사업은 2006년 ‘인문학 위기론’이 나오기 1년 전부터 기획된 사업이다. 장기적으로 인문학 진흥에 대한 필요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추진됐다.
‘인문한국 연구소’ 지원사업은 최대 연 15억의 지원을 10년간 계속한다는 초대규모의 지원사업인데, 돈만 보고 비판해서는 안될 일이다. 개인 연구비 지원과는 달리 인문학 연구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사업 성격에 맞는 적정한 지원규모인지를 논했어야 옳다.
이처럼 오랜 동안 침체에 빠져 있던 인문학계에 새로운 고동을 일으키고, 많은 인문학의 후속세대가 자신의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희망을 준 것만으로도 사업의 의의는 충분하다 하겠다.
터놓고 말해, 300여억원의 지원으로 전국 학자들에 이렇게 큰 움직임을 일으킬 수 있는 사업이 어디 또 있는가?
자연과학 연구나 기술 개발에 투자하는 비용에 비해 인문학에 대한 투자는 정말 미미하기 짝이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규모에 비해 그 결과 또한 미미하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이 큰 전기를 이루었던 인문학 진흥 사업의 예산 신규사업분이 한해 만에 대폭 삭감되어 인문학 부흥에 타격을 입게 됐다.
일률적으로 몇%를 삭감한다는 정부 방침에 의한 획일적인 삭감이라니 예산편성이 이렇게 이루어져도 되는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었다.
인문학 진흥 사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인문한국 연구소’ 지원사업의 신규사업예산이 작년에 비해 반 정도로 축소됐고, 나머지는 그대로 유지된다는 점에서 그리 큰 삭감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문한국 연구소’ 지원 사업은 인문학 진흥 사업의 핵심이며, 전국 인문학자들이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사업이다.
핵심이 흔들려버린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며, 모처럼 일어났던 인문학 진흥 열기가 찻잔속의 태풍으로 끝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더더욱 걱정인 것은 좀 줄어든 규모라도 시행되는 올해와도 달리 내년에는 아예 신규모집 예산이 없어져 버리는 경우다. 이럴 경우 모처럼 일어났던 인문학 진흥의 열기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가 발생할 것이다.
예산의 숫자놀음으로 백년 앞을 내다보는 사업을 뒤흔드는 일이 제발 내년에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또한 인문학자들과 양식 있는 지성인들의 의식이 인문학 진흥을 위한 구체적인 힘으로 드러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