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한국의 대학들이 좀 더 나은 강의를 제공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들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좋은 강의를 제공하려면 시스템 확충이 선행돼야 한다.
미국의 대학 강의실 풍경에서 한국과 가장 다른 점을 꼽으라면 출석을 부르는 일이 없다는 점이다. 강의료를 지불하는 학생을 고객으로 보기 때문에, 수업을 이용하는 권리는 학생에게 있지 교수에게 있는 게 아니라고 판단한다.
미국의 대학수업은 이처럼 철저하게 고객중심으로 짜여져 있다. 서부의 사립대학인 스탠퍼드대의 경우 강의에 빠지는 학생들을 배려해 오히려 전체 강의를 녹화해 언제든지 다시 볼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다. 학점에 출석점수를 반영하는 우리나라 대학과는 분명 다른 접근 방식을 가지고 있다. 물론 강의 비디오 자료는 수업시간에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학생들이 복습 자료로도 활용할 수 있다. 특히 외국인 학생들이 강의를 이해하는 데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이 ‘교육은 강의실에서만 이뤄진다’고 생각할 때, 미국 대학은 강의 비디오를 제공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강의실 밖에서도 최고의 교육환경을 제공하려고 애쓴다. 최근 우리나라 대학에도 ‘문제 해결형 강의(PBL)’가 확대되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이미 팀별로 과제를 제출하는 수업이 보편화돼 있다. 도서관이나 학과에서 이런 팀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게 공간을 충분히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PBL수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실제로 학생들의 과제 수행에 필요한 장소제공은 부족하다. 학생들이 충분한 논의와 토론을 거쳐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장소가 없어 커피점이나 학생식당을 이용하고 있는 모습은 안타깝다.
강의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제반 시스템 중 하나는 강의시수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일리노이대의 경우 교수 개인의 강의시수가 절대 두 강좌를 넘지 않는다. 학부와 대학원 강좌를 한개씩 맡는 게 일반적이다. 위스콘신대 밀워키캠퍼스의 경우에도 한 학기당 세 강좌 이상을 맡기지 않는다. 학부강의중심 대학이라고 하더라도 한학기당 세 강좌 이상을 담당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교수의 강의 시수 문제는 강의의 질과 직결된 문제다. 한 과목당 주당 준비시간은 10시간이 적당하다. 강의준비 외에도 각종과제물 출제와 평가시간이 더해진다. 또 학생들의 과목관련 질문을 받는 오피스아워(office hour)를 주당 두 시간 정도 포함시키면, 적어도 15시간 정도가 투입돼야 강의의 질을 유지할 수 있다. 순수 교육중심의 대학에서 세과목을 담당하면, 수업에 투입되는 시간은 45시간 이상이 된다. 미국의 연구중심대학에선 50%의 교육을 계약조건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 50%는 주당 자신이 일해야 할 시간의 50%, 즉 20시간을 강의에 투입해야 한다는 얘기다.
미국 대학에선 또 수준 높은 강의를 위해 대형 강의의 경우 담당조교를 배정한다. 담당조교의 역할은 실험을 담당하거나 각종 과제에 대한 평가를 담당해, 교수가 강의진행에 최대한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최근 국내 대학가에서 공개 논란이 일고 있는 강의평가의 경우 미국에서는 매우 보편화된 것이다. 그러나 평가의 진행방식은 우리와는 다르다. 일리노이대의 경우 학기 중 수업시간에 평가가 이뤄지고, 학기가 다 끝난 뒤 평가하도록 한다. 교수와 학생 간 학점을 중심으로 상호 평가되는 일을 없도록 한 것이다. 한국의 경우 강의평가에 대한 학생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학기말 성적확인과정에서 평가를 하도록 해 상호간 학점으로 인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을 열어 놨다. 특히 강의에 대한 중간 평가의 경우 학생과 교수 간 감정적 요소가 작용할 수 있으므로 보완이 필요하다. 미국의 대학제도의 우수한 점은 평가가 정성적으로 이루어 진다고 해도 상호 인정할 수 있는 믿음에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도한 경쟁과 과도한 정량적 평가를 일반화함으로써 교육에 대한 상호신뢰도를 무너뜨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수준높은 강의를 제공하는 미국대학의 시스템적 특성은 결과적으로 고객중심으로 강의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또 강의마다 충분한 인력을 배치하고 캠퍼스 전체를 강의실로 만들려는 노력도 더해진다. 그리고 최고의 강의를 제공하기 위해 교수에게 강의를 준비할 충분한 시간을 주고 있다. 상호신뢰에 바탕을 둔 강의평가도 국내 대학이 참고할 만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