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라가 어지럽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날이 갈수록 첨예화되고 있다. 촛불 시위와 이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를 보는 심정은 착잡하기만 하다. 정치적 파장이야 이에 훨씬 미치지 못하지만 교육과학기술부 간부들의 모교 방문을 둘러싼 해프닝도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정부를 보는 민심은 싸늘하기만 하다.
가장 효율적인 정부, 경쟁력을 최우선시 하는 정부, 일사불란한 정부, CEO 대통령을 표방하고 나선 정부가 민심으로부터 가장 멀어지는 정부가 될 수도 있다는 아이러니가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효율적인 정부, 일사불란한 정부 뒤편에 도사리고 있는 동질적인 사고, 유유상종의 의사결정 참여자들, 브레이크 없는 정책결정과정이 최근 보여 지고 있는 정부실패의 근본적인 원인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쇠고기 수입이건 교과부 간부들의 모교 방문이건 크고 작은 정책결정과정에서 누군가가 ‘아니오’라고 나서면서 브레이크를 걸었다면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합주의적 정책결정, 사회집단의 참여적 의사결정, 정당의 능동적 역할이 제도화된 서구 국가들과는 달리 우리의 경우에는 이너서클 내에서의 내밀한 정책결정이 관행화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의 경우 실패를 줄이기 위해서는 정책결정과정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터져 나오도록 해야 하고 내부적인 브레이크가 작동할 수 있는 분위기와 여건을 조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문제는 청와대건 내각이건 지나치게 동질적인 사람들로만 채워져 있다는 것이다. 소위 ‘고소영’ 내각, ‘강부자’ 내각이라 이야기하는 것은 단순히 비슷한 사람들만의 모임에 대한 질투와 시기가 아니다. 동질적인 인적 구성에 대한 우려는 동질적인 사고에 대한 우려이다. 또한 이질적인 견해가 뒤섞이는 것이 제도화되어 있지 않은 한국의 정책결정과정에서 동질적인 사고에 대한 우려는 민심을 읽지 못하는 일방적인 정책추진의 가능성, 그리고 이에 뒤따르는 정책실패와 정부실패에 대한 우려를 내포하고 있다.
동질적인 인적 구성과 동질적인 사고로만 구성된 정부에서는 여론과 민심의 역풍이 있어야만 실수에 대한 인식이 가능해지지만, 이를 제대로 인식하기까지에도 한참의 시간이 걸린다. 쇠고기 수입이나 교과부의 모교 방문 해프닝 모두 여론의 역풍이 있고 난 후에도 이를 인식하고 바로 잡으려 하는데 한참의 시간이 흘렀고, 이러한 시차는 여론을 더욱 악화시켰을 뿐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뒤늦게 실수를 인식한다 하더라도 실수를 교정하기까지에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갓 출범한 정부이기 때문에 할 일이 무척 많이 기다리고 있다. 고등교육만 하더라도 입시자율화, 대학자율화, 각종 재정지원사업의 기조 변경 등등 굵직굵직한 정책들의 구체적 모습이 드러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도 우려되는 것은 대학 관련 정책들도 동질적 사고에 의한 정책결정, 브레이크 없는 정책 추진의 전철을 밟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다. 위로부터 주어지는 ‘대학자율화’는 참다운 자율화라 부르기 어렵다. 그 내용조차 이너서클로부터 확산되는 것이라면 더더욱 자율화라고 부르기 어렵다.
대학을 둘러싼 사회적 담론이 활성화되고, 다양한 목소리가 표출되고, 쟁론과정을 거쳐 다양한 목소리가 조화되는, 성급하지 않은 대학자율화를 그려본다. 한 방향으로만 치닫는 자율이 아니라 ‘공론의 장’을 거친 자율화에는 애꿎은 초가 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연섭 / 연세대 교수(행정학), 국제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