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나라에나 정부에는 교육, 외교, 국방 등을 담당하는 부처가 있다. 이런 부를 ‘정책부서’라고 하는데 예를 들어 교육과학기술부는 교육과 과학기술에 관련된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토대로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여 정책을 기안하고 결정하는 곳이다.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서 여러 산하조직을 가지고 있다. 청와대가 기본 개념과 방향을 제시한 헌법이라고 한다면 교과부는 좀 더 구체적인 법률과 시행령에 해당하고 학술진흥재단이나 과학재단 같은 곳은 이를 실행하는 곳이다.
그러나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리의 정부 부처들은 정책부서임과 동시에 시행부서이다. 도매업만하는 줄 알았더니 도·소매업을 다 한다. 낮에는 소매업하고 밤에는 도매업 하는 동대문의 패션타운 같다. 자신의 업무가 분명치 않고 이일 저일에 쫒기다보니 집중이 안 되고 전문성이 떨어지는 현실 앞에서 성과를 바라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된다. 교과부도 교육청이나 대학에서 할 일은 과감히 넘겨주고 정책부서로서 본연의 기능을 충실해야 한다. 제대로 된 틀에 어떤 생각이나 철학을 담아야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온다.
이렇게 된 것은 교과부의 잘못만은 아니다. 정치인도 잘못했고 국민들도 잘 했다고 볼 수 없다. 특히 교육청이나 대학을 비롯하여 산하기관들이 교과부에게 업무를 미루거나 책임을 전가한 점은 없을까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한다. 교과부를 탓하기에 앞서 교과부가 할 수 있는 일과 하지 않는 일에 대한 구분이 있어야 한다. 우려되는 것은 먼저 교과부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 ‘마누라만 빼고 다 바꿔라‘ 라는 말이 유행된 적이 있다. 그러나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도 있듯이 옛날에도 쉽지 않았나 보다.
몇 년 전에 집값이 폭등하여 집값을 잡겠다고 많은 정책들을 내놓고 서로 잘잘못을 따질 때에 내 주변 사람들은 물론 정책을 담당했던 몇몇 사람들에게 ‘강남에 10억원 짜리 아파트의 전세 값이 얼마면 적당하냐’라고 물었더니 3억원에서 5억원까지 여러 대답이 나왔지만 한사람도 10억원 이상을 말한 사람은 없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다시 ‘만일 10년 동안 집값이 그대로라면 어떨까’하고 되물었더니 주저주저하더니 은행이자나 집수리 비용을 감안하면 10억원 이상 되겠지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 집값은 오른다는 믿음이 있다. 집값을 못 잡는다고 욕하는 사람들이나 집값을 잡겠다는 사람들이나 집값이 오른다고 생각하니 어떻게 집값을 잡겠는가. 혹시 우리가 정부에게 도·소매업을 암암리에 요구하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교과부에서 정책을 수립하고 결정하는 데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하나는 규정과 원칙에 따라 실무적으로 정책 초안을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무적 판단에 따라 정책을 수정하고 보완하여 결정하는 것이다. 실무자가 정무적 판단을 고려하여 정책을 만들어도 곤란하고 규정과 원칙만을 우겨도 문제가 된다. 악법도 법이고 장발장이 도둑질을 한 것은 죄이다. 1 더하기 1이 2인 것은 진리이고 1 더하기 1이 3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정무적 판단의 결과이다. 비논리가 논리인 것은 비즈니스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정부에서 장·차관을 정무직이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고, 기업에서 경영진이라고 하는 것도 그것이다.
그러나 정무적 판단을 합리화하기 위해 진리를 왜곡시키거나 정무적 판단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진리만을 고집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실무자는 진리에 충실하지만 정무적 판단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이해해 주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물론 진리를 말하는 실무자를 보듬어주고 정무적 판단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
법학전문대학, 의학전문대학, 대학 법인화, 대학입시 자율화, 산학협력 등등 수많은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이 정책들이 어제 오늘 갑자기 나온 것은 아니고 수년 아니 십년 전부터 논의되었던 것들이다. 더 이상 늦출 수가 없기 때문에 서둘러 시행하다보니 이해가 다른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온다. 다양성을 특징으로 하는 선진 사회에서 불만이 없을 수는 없지만 무리하게 진리만을 고집하거나 정무적 판단을 위해 정당화하기 위해 진리를 왜곡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이제는 국민들도 정부나 공무원에 대한 나쁜 기억에 얽매여 탓만 하지 말고 믿음을 갖고 기다려줄 때이다. 1945년 해방이 되고 정부가 여러 번 바뀌었지만 경찰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 한구석에는 ‘순사’가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사회는 많이 깨끗해졌다. 거리의 환경도 그렇지만 공무원들도 그렇다. 아직도 일부 공무원의 잘못을 마치 대부분의 공무원이 그런 것처럼 과장하는 것을 볼 때마다 우리들의 마음속에 가난하고 어둡던 시절의 흔적이 남아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공무원이 박봉에 뒷돈이나 받고 관련 기관으로 옮겨 보상받고 은퇴하는 그런 시대는 갔다. 공무원은 자부심을 먹고 사는 직업이다. 우리가 그들을 그렇게 나쁘게 생각하는 한 그들도 변할 리 없다. 공무원들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 권력에 맹목적으로 추종하거나 국민을 생각하지 않는 정책이라면 국민들의 생각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닭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 정부는 우리의 거울이고 우리는 정부의 또 다른 모습이다.
홍국선 서울대 교수(재료공학부) / 신소재공동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