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장집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65)가 20일 마지막 강의를 진행했다. 한국의 ‘대표적 진보학자’의 마지막 강의가 열린 인촌기념관 1층 강당은 1000석이 꽉 들어찰 정도로 교내외의 관심을 모았다.
‘한국의 정치와 나의 정치학’이란 주제로 강의를 진행한 최장집 교수는 ‘정치학’을 “현실과 떨어질 수 없는 정치 현상을 다루기 때문에 갈등적·파당적이란 비난을 면키 어려운 학문”이라고 규정한 뒤, “6월 항쟁 이후 한국 정치의 최대 문제가 되고 있는 촛불집회”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최 교수는 “촛불시위는 민주주의의 제도적 장치가 실패한 결과로 나타났다”며 “제도정치의 실패로 생기는 문제 때문에 운동이 그 역할을 대신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촛불시위나 운동이) 항상적으로 제도정치를 보완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안정성을 위협한다며 촛불집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보수적 관점이나, 운동이 민주주의에 기여한다는 측면에서 이를 긍정적으로 보는 ‘이상주의적 관점’ 모두 동의할 수 없다는 말이다.
최 교수는 민주주의 현실에서 실천할 수 있는 최선의 과제를 ‘대의제 민주주의’라고 규정했다. 그는 “정당정치를 복원하고 활성화 해 대의제 민주주의를 강화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운동의 역할을 축소하는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자신의 정치학’이 현실 비판적이었기 때문에 ‘운동권 정치학자’, ‘친북좌경’, ‘좌파 정치학자’ 등의 평가를 받아왔다며 “이는 잘못된 평가에 의한 것”라고 일축했다. 최 교수는 “해방이후 이데올로기적 양극화 시대엔 민중에 초점을 두었고, 권위주의 정치체제 하에서는 제대로 대변되지 못한 소외계층과 호남지역 문제를 다뤘다”며 “한국적 현실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라는 것에는 수긍하지만, 급진적이라는 평가는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최 교수는 자신의 관심은 “어떤 제도와 제도적 실천이 민주주의를 건강하게 발전시킬 수 있는가 하는 ‘레짐(Regime)의 정치학’에 집중돼 있다”고 말했다.
청중의 대다수였던 대학생과 대학의 역할에 대해서도 고언 했다. 최 교수는 “우리나라 대학이 미국의 일류대학에 비해 모자라지 않을 정도로 외적인 성장은 이뤘지만 내적 정신(esprit)은 갖추지 못했다”며 “대학에서 학문의위엄과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열정을 찾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대학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추동하는 본산이 대학이자 세계화의 부정적 결과가 그대로 집중되는 곳”이라며 “한국사회의 문제의 근원이 어쩌면 대학과 교육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기업이나 관료, 정당, 언론 등의 모든 인적자원을 공급하는 곳이 대학이라는 이유에서다.
대학생에 대해서도 “취업경쟁과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으려 안감힘을 써야 하는 학생들에게 무슨 말을 한다는 것이 또 다른 부담이 될 것 같다”라면서도 “굳이 덧붙이자면 문제의식과 관점을 넓게 갖기를 기대한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세계화’를 ‘미국화’로 받아들여서 영어만을 공부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최 교수의 강연에 앞서 정치외교학과 학생들과 교수들은 영상편지를 통해 “퇴임 뒤에도 연구 활동과 저술 활동을 계속해 달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이어 연단에 오른 최 교수는 “1주일 전 종강할 때는 강단을 떠난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했는데 여기에 와서 실감하게 됐다”며 “마지막 강의를 준비해준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고 화답했다. 최 교수는 8월 말 정년퇴임 후 서울 서교동에 사무실을 내고 연구와 집필 활동을 계속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