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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문화장벽 넘은 세계철학대회
아시아 처음···한국철학 위상 높아져


지난달 30일부터 서울에서 개최, 일주일간 지성의 향연을 펼친 ‘제22회 세계철학대회’가 “동·서양의 문화장벽을 뛰어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서울대회의 주제는 ‘오늘의 철학을 다시 생각한다(Rethinking Philosophy Today)’로,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철학으로 다시 한 번 짚어보자는 의미를 담았다.

이명현 세계철학대회 한국조직위원회 의장은 “자신들의 문화에 벽을 쌓고 살아가면서 남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기 때문에 전쟁과 같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이번 대회에 대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새 시대의 새로운 철학이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대회는 무엇보다 첫 아시아대회라는 점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1900년 파리에서 첫 개회한 이후 108년 전통을 지닌 대규모 국제대회가 아시아에서 열리는 것은 이번 서울대회가 처음이다.

첫 대회인 만큼 유교·불교·도가철학 등 동양철학 분과를 보강하는 등 명실상부한 세계철학대회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피터 캠프 국제철학연맹 회장은 이에 대해 “문화적 장벽을 뛰어넘는 좋은 계기이자 오리엔탈리즘을 불식시키는 유익한 대회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전 세계 유명 철학자들이 모두 모이기 때문에 ‘철학 올림픽’이라고도 불리는 세계철학대회에는 104개국에서 2600여명의 철학자가 참석해 135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54개 분과 478개의 세션 토론을 여는 등 양적·질적 풍성함을 자랑했다.

중심행사로 꼽히는 전체강연(Plenary Sessions)은 △도덕철학, 사회철학 그리고 정치철학을 다시 생각한다 △형이상학과 미학을 다시 생각한다 △인식론, 과학철학 그리고 기술철학을 다시 생각한다 △철학사와 비교철학을 다시 생각한다 등 4개 주제에 전 세계 쟁쟁한 철학자들이 출연해 많은 화제를 뿌렸다.

비서구권의 철학과 문명 간 대화의 문제, 전 지구적 인권 문제 등을 연구 중인 정치철학자 프레드 달마이어와 2002년까지 아비장 세계 시 축제를 주도적으로 이끌면서 아프리카 예술·문화를 세계에 알린 타넬라 보니를 비롯, 현대 사회의 기술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초기술학을 제기했던 일본 원로 철학·미학자 이마미치 도모노부 등이 전체강연을 이끌었다.

특히 형이상학·심리철학 분야에서 현존 최고 철학자로 불리는 김재권 브라운대 철학과 석좌교수는 한국을 대표하는 철학자로 주목을 받았다. 심리철학의 문제를 극복코자 ‘심신수반론’을 제시한, 자신의 이론에 대한 대안으로 ‘기능적 환원주의’를 내세웠던 그는 이번 대회에서 ‘특수과학에 존재하는 법칙들에 반하여’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특수과학도 물리주의처럼 보편적인 인과관계를 설명할 수 있다는 논문의 내용은 또 다시 철학계에 파장을 미칠 예정이다.

이밖에도 프랑스 대표 철학자인 장-뤽 마리옹과 베르트랑 생-세르냉, 이탈리아의 에반드로 아가찌, 미국의 어네스트 르포어와 중국의 남미의 철학자 엔리케 뒤셀 등은 그 이름만으로도 대회의 성격을 설명할 정도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체강연 외에도 △갈등과 관용 △세계화와 코스모폴리타니즘 △생명윤리, 환경윤리 그리고 미래세대 △전통, 근대 그리고 탈근대 △한국의 철학 등 다섯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과 기금강연에서도 전 세계 굵직한 석학들이 대거 등장, 지성의 향연을 펼쳤다.

무엇보다 외국 학자들에게 한국철학을 소개하게 된 것은 이번 대회의 값진 수확으로 평가받는다. 한국 철학계에선 조가경 뉴욕주립대 석좌교수, 차인석 서울대 명예교수, 이광세 미국 켄트주립대 교수, 김여수 전 한국철학회장, 길희성 서강대 명예교수, 이태수 서울대 교수 등이 이번 대회에 참석했다.

지난 2~3일에는 20세기 한국의 대표적 사상가인 유영모·함석헌 선생의 ‘씨울사상’이 소개됐으며, 지난 3일에는 87년 민주항쟁 이후 20년간 한국 민주주의 발전과정을 철학적으로 소개하고 미래를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돼 눈길을 끌었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가 개최한 ‘87 그리고 87 이후 시대의 한국 민주주의와 철학’ 특별발표회에서는 이병창 동아대 교수가 한국 민주화 운동 속에서 김지하 시인의 생명사상을 분석하고, 이순웅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연구원이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의 ‘인간적’ 사회주의를 고찰했다.

이번 대회를 기회로 세계 철학자들의 교류가 활발해지는 한편, 한국철학에 대한 위상도 올라갈 것이라는 평가다.

대회를 주최한 한국철학회의 이삼열 회장은 이에 대해 “이번 대회를 통해 한국철학은 주체적인 우리의 철학을 만드는데 힌트와 자극을 받을 것”이라며 “그동안 종교로만 여겨졌던 유교와 불교, 도교는 물론 퇴계·율곡 등 서양 철학 못잖은 우리 철학이 세계철학 속에서 나아갈 방향을 찾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아울러 “유럽 중심의 세계철학에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의 철학을 받아들여 완성된 철학으로 발전하는 디딤돌이 될 것”이라면서 “이번 대회를 계기로 사상 간의 교류뿐 아니라 세계 철학자들의 인적교류가 활발해지고, 커뮤니티가 형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중 기자 (gizoong@unn.net) | 입력 : 08-08-04 오전 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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