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스쿨의 설립인가 절차가 끝나자 각 대학교에서는 앞 다퉈 자유전공학부를 설치하고 있다. 로스쿨인가로 폐지해야 하는 법과대학의 입학정원을 자유전공학부 형태로 소화하려는 것이다.
자유전공과정 그 자체는 문민정부 이래 추진되어 온 학부제의 틀에 충실한 것으로 환영할 일이다. 문제는 이 자유전공학부가 다양한 교양과 학문지식을 전수하려는 본연의 목적을 저버리고 로스쿨이나 의·치학전문대학원 진학을 위한 입시준비학원으로 왜곡되려는 조짐이다.
로스쿨이나 의·치학전문대학원 제도는 충실한 학부제를 바탕으로 다양한 교양과 지식을 갖춘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함이다. 학부과정이 옹색한 전공교육에 묶여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제대로 길러내지 못하고, 법률가나 의료인을 ‘찍어내는’ 교육현실을 깨치기 위한 것이다. 다양하고 폭넓은 학부교육을 이수한 학생으로 하여금 자신의 교양과 전공을 살리고, 해당 전문 직업에 임할 수 있게 한 것이 그 본래 취지인 것이다. 아울러 전문대학원 체제를 통해 법학이나 의·치학과 같은 ‘인기’ 학문분야에 밀려 고사 직전에 이른 인문학이나 기초 학문의 숨통을 열어보자는 목적도 가진다.
그러나 자유전공학부는 이러한 전문대학원 제도가 학부교육을 초토화시키는 역기능을 수행하도록 부추길 수 있다. 이미 일부 대학교에서는 이를 로스쿨이나 의·치학전문대학원 준비과정으로 운영할 예정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의·치학전문대학원으로 인해 자연과학분야에서 특정 교과목이 이상적으로 비대화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여기에 자유전공학부까지 설치해 이를 프리 로스쿨의 형태로 운영한다면 사태를 더욱 악화된다. 전문대학원진학반 과정을 공식화함으로써 자칫 학부과정이 전문대학원 준비과정으로 재편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대학의 이념에서만 보면 학부과정은 그 자체로서 목적이 되어야 한다. 특히 인간과 세계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올바른 이해를 추구하는 인문학이나 기초학문 분야는 더욱 그렇다. 비판과 실천의 학문이 형성돼야 비로소 인류사회의 발전과 진보가 터 잡을 수 있다.
잘못 자리 잡은 자유전공학부는 이런 이념을 정면에서 거부한다. 이것은 모든 학문분야를 전문대학원 입시를 위한 수단으로 격하시켜 버린다. 그 규모와 관계없이 자유전공학부가 가지는 흡인력과 영향력은 전체 대학의 학습 분위기까지 좌우할 정도로 폭발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최근 우리 대학을 지배하는 생산성 이데올로기는 이를 증폭시켜 가뜩이나 위축되어 있는 인문학이나 기초학문을 그대로 고사시켜버리기 십상이다.
문제의 근원은 로스쿨 자체에 있다. 로스쿨 입시에서 다양한 교양과 지식을 갖춘 학생들을 선발할 수 있는 전형방법을 갖추지 못한 채 시험점수에 의존하는 고답적인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험점수가 전형요소가 되면 필연적으로 고득점을 위한 테크닉이 필요하며, 학부에서는 이를 전수하기 위해 일렬로 도열하게 된다. 자유전공학부는 그 중심을 차지한다. 그런데도 로스쿨협의회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손을 놓고 있다.
그동안 몇 번의 부침을 거쳐 온 자유전공학부는 사실 폐쇄적 전공체제로 점철된 대학교육의 변혁을 기대할 수 있는 하나의 실험장이다. 그리고 어렵사리 도입된 로스쿨 제도는 그 성공을 위한 가장 좋은 터 잡이가 된다. 각 대학들은 보다 거시적이고 발전적인 로스쿨 입학 전형제도를 마련하여야 한다. 그렇게 해야 폭넓은 교양과 다양한 전공자를 법률전문가로 키우겠다는 로스쿨 본연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