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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 ‘기준 설정’과 ‘과거 청산’ 매듭짓자
[숭실대 공동기획] 학회별 기준 세우고, 과거 관행 정리돼야
대학생 대상 리포트표절 예방교육도 절실
◆가이드라인 설정과 과거 청산=표절에 대한 근절 대책을 논할 때 가장 먼저 정리돼야 할 부분은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일이다. 기준이 있어야 문제를 찾아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연구윤리 헌장이나 규정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대학이나 학회는 소수에 불과하다. 지난해 교육과학기술부가 국내 학회 280곳과 4년제 대학 218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연구윤리 관련 헌장이나 규정을 갖추고 있는 학회는 22.5%, 대학은 15.6% 였다.

각 학회를 아우르는 공통된 기준은 사실상 만들기 어렵다. 때문에 사회적으로는 표절에 대한 기본적인 가이드라인만 명확히 제시되고, 나머지는 학문분야별 특성이 맞게 각 학회에서 기준을 만들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인문학·사회과학·자연과학 등 각 분야에서 연구윤리 기준을 만들 때 쟁점이 되는 부분은 다르다. 예를 들어 인문학 연구에서는 자연과학에서처럼 동일한 원자료를 사용 했다거나 그래프가 같다는 것으로는 표절여부를 가릴 수 없다. 인문학에선 오히려 과거문헌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중요하게 취급된다. 전문가라면 누구나 알만한 ‘상식’은 구태여 인용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관행’인 학문 분야도 있다.

이승선 충남대 교수(언론정보학)는 “모든 학문에 일률적인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사회적으로는 남의 논문을 베껴서는 안 되고, 인용할 땐 출처를 밝혀야 한다 등의 기본적인 원칙만 세우고, 나머지는 학회별로 자율적 기준을 만들어 적용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표절에 대한 근절 대책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화두가 ‘과거 청산’이다. 연구윤리에 대한 기준이나 개념이 명확히 서지 않았던 시대의 ‘관행’들을 어떻게 정리하느냐의 문제다. 학계에서는 이 문제를 정리하지 않으면 표절시비는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가장 많이 제시되는 방법이 표절 논문에 대한 자진 철회기간을 설정하자는 것이다. 학회 단위로 나름대로의 표절 기준을 만들고, 학자 개인이 자신의 논문을 삭제하는 방법이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법학)는 “학회의 표절기준에 비춰봤을 때 자신의 논문이 표절에 해당하면 학술진흥재단 데이터베이스 등에서 논문을 자진 삭제하면 될 것”이라며 “학계에서는 이와 관련된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럴 경우 한 가지 문제는 남는다. 예를 들어 교수임용·승진 당시 연구 업적으로 제출한 논문을 자진 삭제했을 경우다. 그럴 경우 당시의 교수 임용이나 승진을 무효로 봐야 할 것이냐의 문제다. 이에 대해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현재의 표절 기준은 과거보다 엄격해전 잣대로 만들어지는 것인데 이를 과거로 소급해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이중게재도 풀어야 할 숙제=이중게재도 풀고 가야할 숙제다. 사실 이중게재 문제는 표절 보다 더 뿌리가 깊은 ‘관행’에 해당한다. 우리나라 학회에서 학술지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길어야 40년 전. 특히 학술지가 ‘학술지 다운’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고작해야 20년 전의 일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학회지가 정착되기 이전인 20년 전만해도 단과대학이 설립되면 권위를 위해 논문집이나 학술지를 만드는 게 유행 이었다”며 “그러면 해당 단과대학의 시니어 교수는 반강제적으로 교수들에게 논문을 할당했고, 교수들은 기존에 냈던 자신의 논문을 조금 손봐서 내는 게 관행이었다”고 말했다.

논문 편수가 워낙 부족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외국저널에 논문을 발표하기 전 선행연구 결과를 자신이 속한 학회지에 게재하고, 이를 보완해 해외 저널에 발표하는 사례도 많았다. 따라서 표절로 판단되는 자신의 논문을 삭제하는 한편, 이중 게재된 논문에 대해서도 어느 한 쪽의 저널에 대해서는 게재를 철회하는 정리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학은 온갖 이해관계와 갈등이 존재하는 사회다. 특히 총장선거 때나 보직배정 기간에는 이런 갈등이 정점에 달한다. 서울의 한 사립대에서는 보직을 놓고 경합 중이던 같은 학과 교수들이 서로의 논문을 뒤져 폭로 공방을 벌인 일도 있다. 교과부에는 해마다 교수 임용시기인 1~2월만 되면 논문 표절에 대한 투서나 제보가 100건이상 접수된다고 한다.

이런 갈등이 때로는 표절에 대한 정화작용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대학가에서는 표절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면서 대학 자체적으로 연구진실성위원회와 관련 규정을 만들고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대학 내 연구진실성위원회에 동료 교수의 표절이 제보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대학 내 갈등관계 속에서 과거 관행이 자체적으로 정리되고 있다는 얘기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각 대학의 연구윤리위원회 등에 표절에 대한 제보가 굉장히 많이 제기되고 있고, 이에 따른 징계가 이뤄지고 있다”며 “대학 내 이해관계에 의한 갈등이 역설적으로 표절에 대한 자정 작용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표절 예방교육에도 힘써야=지난해 부산대에서는 모 학과 교수가 과제물을 표절한 제자들에게 무더기 경고조치를 취한 일이 있었다. 전공필수 과목 수강생 80여명 가운데 동료 학생 것을 베끼거나 인터넷 자료를 그대로 옮긴 학생 39명에 대해 경고조치를 한 것이다. 해당 교수는 학생들의 과제물을 검사하는 과정에서 전체 문장의 80~90%가 일치하는 리포트가 수두룩하게 나오자 ‘뼈를 깍는 심정으로’ 표절한 제자를 가려냈다고 한다.

당시 리포트 표절 심사에 관여했던 교수는 “학생들이 과제물을 제출하면서 타인의 결과물을 도용하거나 표절하는 행위들이 부끄러움 없이 자행되는 등 대학이 진리의 학습장이 아니라 ‘거짓의 연습장’이 되고 있는 게 개탄스럽다”라고 꼬집었다.

이런 문제는 표절에 대한 예방 교육이 미흡한데서 온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대학에서 표절 교육을 철저히 시키기 않기 때문에 적절한 인용법도 모르는 학생들이 많다.

국내 대학 중 표절예방관련 교육을 시키는 곳은 서울대 정도가 유일하다. 서울대는 지난 1학기부터 ‘진리탐구와 학문윤리’강좌를 개설했다. 2006년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 논문조작 사건 이후 강좌개설을 추진한 지 2년만이다. 강의는 단과대별 교수진이 각 연구 분야에서 발생 가능한 표절 사례와 표절 기준을 제시하고, 학생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토론 형태로 진행된다. 또 학생들이 제출한 리포트에 대해 해당 분야 교수들이 문제가 되는 부분을 직접 첨삭한 뒤 돌려주는 방식도 취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대학에서는 학문윤리를 가르치는 별도의 강좌를 찾기 힘들다. 고려대·연세대· 이화여대·서강대·경희대·건국대·아주대 등에는 표절 방지를 위한 별도 강좌가 없다. 동국대가 신입생 중 지원자만을 대상으로 한 3주짜리 글쓰기 강좌에서 표절 관련 부분을 다루는 게 전부다.

경희대는 2007년 2학기 윤리 관련 강좌를 개설하기로 했으나 교과과정 개편 과정에서 강의 개설이 무산됐다. 고려대는 2006년부터 표절을 가리는 프로그램을 자체 개발해 운영하고 있으나 사용은 교수 재량에만 맡겨두고 있다. 아주대는 경영대 신입생 입학시 ‘명예선언문’ 선포 행사로 표절교육을 갈음하고 있고, 한국항공대는 학교 홈페이지를 이용한 표절 교육이 전부다.

한 사립대 교수는 “표절한 학생에 대한 처벌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이뤄질 게 예방교육”이라며 “대학가에 표절 예방교육이 뿌리내려야 진정으로 표절에 대한 근절 노력을 다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하영 기자 (press75@unn.net) | 입력 : 08-10-10 오후 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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