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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 대학 망해야 잘하는 대학 나온다"
서남표 KAIST 총장 "이공계 기피현상보다 학생들의 질 더 걱정해야"
교과부 편입후 연구예산 200억 삭감...'KAIST 특수성 훼손될까' 우려

서남표 KAIST 총장이 교과부 편입 후 KAIST 특수성이 훼손될 것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서 총장은 17일 본지 창간 20주년 특별인터뷰에서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우리 대학이 국립대에 포함되는 것”이라며, 교과부 편입 후의 우려를 나타냈다. EEWS 연구 예산 200억원 삭감과 35명의 신임교원 채용이 무산된 데에 따른 불만으로 해석된다.

한국의 대학교육에 대해선 “20여년 동안 KAIST 에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KAIST 특별법을 통해 비교적 자율성을 확보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정부에서 너무 대학을 관리하려고 하니까 망할 대학이 망하지 않고, 잘 될 대학도 안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KAIST 조차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고 의과대학으로 진학하는 학생이 많다는 지적에 대해선 “적성에 맞지 않으면 다른 데로 가는 게 자연스럽다”며 “우리나라는 경제규모에 비해 엔지니어 수가 많기 때문에 양보다는 질을 강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 총장은 “세계적 대학과 경쟁하려면 규모를 갖춰야 한다”며 “현재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의 1%(약 1000억원) 규모인 KAIST 예산을 두 배로 끌어올리려 한다”고 밝혔다. 전임 러플린 총장의 중도 하차 이유에 대해선 “행정경험이 없는 학자 출신 총장으로 디자인적 사고가 부족”했던 점을 이유로 꼽았다. 의학분야 진출 계획은 “과학기술분야의 연구결과를 테스트할 연구병원이 필요하다”며 “의과대학을 설립하진 않겠다”고 밝혔다.

- 전임 러플린 총장 때와는 달리, 강력한 개혁이 비교적 내부 구성원의 큰 반발 없이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었다. 비결이 뭔가.

“내가 한국 말을 좀 하지 않는가(웃음). 사실 전임 러플린 총장은 행정 경험을 거의 못 쌓은 사람이다. 혼자서 하는 연구를 많이 해온 사람이고, ‘분석적 사고’로 조직을 움직이려다 보니까 어려운 점이 있었지 않았나 생각한다. 새로운 정책을 만들고 교육 커리큘럼을 바꾸는 일엔 ‘디자인적 사고’가 필요하다. 사실 KAIST의 개혁은 교수와 학생 수준이 높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KAIST 교수들 중 상당수가 미국의 일류대학에서 공부한 사람들이다. 이런 교수들에게 세계 일류 과학기술대로 가기 위해 필요한 부분이 뭔지 얘기하면, 한 두시간이면 통한다. 내 얘기가 옳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영어로 공부한다고 하니까 처음엔 반발이 좀 있다가 지금은 잘 하고 있다. 오히려 학업성취도가 3.1점에서 3.21점(4.3 만점)으로 올랐다. 강의 만족도도 영어강의(5점 만점에 4.13)와 한국어 강의(4.12)가 거의 차이가 없다. 이 또한 학생들이 수준이 높으니까 영어강의를 해도 금방 따라오는 것이다. 구성원들이 개혁을 반대하는 것은 두렵고 불안하기 때문이다.”

- 작년까지 과학기술부(과기부) 산하 특수법인으로 있다가 정부조직개편에 따라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로 소속이 바뀌면서 겪는 어려움이 있다면?

“옛 과기부가 지난해 연구중심대학 육성 사업비로 250억원을 책정해 이중 KAIST에 200억원을 배정할 예정이었고, 우리는 이를 ‘EEWS'(Energy, Environment, Water, Sustainbility) 연구 예산으로 쓰려고 했다. 그러나 과기부가 교과부로 통합되고, 이를 모두 WCU 사업에 포함시키면서 우리가 신청한 사업들이 선정돼도 예산은 100억원 정도로 줄어든다. 에너지·환경 분야 연구를 진행하는 데 있어 100억 원은 모자른 액수다.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우리 대학이 국립대에 포함돼 KAIST의 특수성이 훼손되는 것이다. 최근엔 35명의 신임교원을 뽑으려고 했지만 정부의 ‘공공부문 10% 예산 절감’ 정책에 막혀 무산됐다. ‘국가 과학기술의 첨단화’라는 설립목적을 살려기 위해서라도 KAIST의 특수성을 살려야 하는데, 교과부 내 KAIST 담당자 중 과학자가 하나도 없는 게 문제다. KAIST가 세계 일류의 과학기술대학으로 성장하려면 지금의 바운더리 컨디션(boundary condition)으로는 불가능하다. 현재 KAIST 교수 1인당 학생수는 16.4명(7336/448명)이다. 이는 MIT(10.3명)와 스탠퍼드대(8.4명) 보다 못한 수준이다. 한국의 고등교육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는 예산이 적다는 것이다. 교과부가 대학에 지원하는 예산 3조5000억원은 하버드대 1년 예산 수준이다. 이 또한 국내 27개 국립대가 나눠가져야 한다. 이러한 구조를 고쳐야 한다. KAIST가 성공하지 못하면 한국에서 세계 일류 대학이 나오기 어렵다. 이 부분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하고, 이것이 정책반영으로 이어져야 한다.”

- 향후 ‘EEWS 연구’를 수행하고, 교수도 700명까지 확대하기 위해선 예산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재정문제를 어떻게 해소해나갈 생각인가?

“자꾸 정부를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 내가 직접 찾아가 말하면 다들 이해는 한다. 그런데 실천이 안되는 게 문제다. 현재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의 1%(1000억원 가량)가 KAIST 예산으로 지원된다. 이를 2%로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이 부분을 설득하면 반대하는 사람 없이 옳다고 하니까 잘 되리라 믿는다. 발전기금 모금을 위해 현재 재단을 발전기금 모금에 유리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 결과 2006년부터 기부 약정액이 급증하고 있다. 2006년 52억원에서 2007년 162억원으로, 올해 8월 현재 598억원으로 늘었다. 최근에는 류근철 박사가 586억원을 기부하면서 내부적으로 사기가 올라가 있는 상태다. 올해 세계대학순위도 올라갔고, 개혁도 잘 진행되고 있는데 MIT와 경쟁하려면 돈이 더 필요하다. 국내 대학들이 미국의 세계적 대학과 경쟁하길 원하지만 구조적으로 어렵다. 국내 대학 등록금은 미국의 사립대에 비해 5분의 1 수준인데, 교수 급여는 미국과 별 차이가 없다. 수입은 적고 지출이 많으니 학생들을 많이 선발할 수밖에 없고, 교수들은 많은 시간을 강의에 할애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교육의 질이 떨어지고 연구할 시간이 없어지는 것이다.”

- 생명공학연구원과의 통합 논란, ICU·한구과학영재학교와의 통합 결정 등 외연을 확대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규모를 키워 얻으려는 효과는 무엇인가.

“IT분야에서 세계적 대학과 경쟁하려면 교수 수가 200명은 돼야 한다. ICU와 통합하게 되면, 교수 수가 147명이 돼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출 수 있게 된다. 그래도 50명은 더 뽑아야 한다. 생명공학연구원과도 통합을 추진했던 이유가 경쟁력 있는 규모를 갖추기 위해서 였다. 그곳의 연구원 중 일부를 교수로 채용하려 했다. 현재 생명공학 쪽의 교수가 5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200명은 돼야 생명공학 계통에서 세계적인 경쟁이 가능하다. 그래서 계획을 세울 때도 학과장에게 ‘교수 200명’을 생각하고 계획을 짜라고 한다. 생각이 목표에 닿아 있어야 시야가 넓어지고, 어느 분야에 얼마가 필요한지 알 수 있다.”

- 의학분야 진출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계획은.

“요즘은 ‘의학-이학 박사학위 과정’(MD-PhD program)이란 게 있다. 메디컬 닥터(MD)이면서 연구(PhD)도 하는 것이다. 의사중에서도 연구하는 사람이 나와야 하고, 생물학 전공하는 사람도 임상을 몰라서는 안 된다. 사실 의술이 발달하게 된 것은 과학기술 발전이 뒷받침 됐기 때문이다. PET-CT(양전자 단층촬영기와 단층컴퓨터 촬영기를 결합한 진단 장비)가 있어서 암을 정확히 진단할 수 있게 된 걸 보면 알 수 있다. 과학기술분야의 연구 성과물도 임상에서 테스트 해봐야 하는데 병원이 없으니까 어렵다. 의학과 과학기술이 함께 가야 발전이 있다. 생명공학 분야 등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도 의학 분야 진출이 필요하다. 다만 의과대학은 만들 생각이 없다. 우리가 개발한 기술을 시험할 수 있는 연구병원이 필요하다.”

- 최근 국정감사에서 KAIST의 중도 학업 포기생이 매년 늘고 있고, 이중 상당수가 의과대학으로 편입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공계 기피 현상에 대한 KAIST 차원의 대책은?

“KAIST 전체적으로 봤을 때 중도 학업 포기생은 미미한 수준이다.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과학기술은 열정을 갖고 공부해야 한다. 적성에 안 맞고 하기 싫으면 다른 데 가는 게 자연스럽다. 대신 인문대학에서 KAIST로 올 수 있는 길을 열어놨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과학기술로 전공을 바꿔 들어오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 경제규모에 비해 엔지니어 수가 많다. 현재 국내 7만명의 엔지니어가 있는데 이는 미국과 비슷한 규모다. 오히려 양보다 질을 강조해야 할 때다.”

- 취임 후 KAIST 입시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인성·창의성·리더십에 중점을 둔 평가를 하고 있는데, 한국의 대학입시에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보나?

“과거와 달리 성적과 인성, 두 축으로 학생을 평가한다. 그러다 보니 과거에는 무조건 들어올 학생들이 떨어지고 있다. 예전엔 과학고 학생들은 성적이 좋으면 무조건 KAIST 간다고 했는데 상황이 변하니까 태도도 달라지고 있다. 매년 면접 방식이나 문제도 다르게 하려 한다. 면접을 잘 보기 위해 특별히 준비 시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입시제도 개혁은 사교육을 없애기 위한 것이다. 다른 대학들도 이런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우리가 제도를 바꾸니까 몇몇 대학도 변화를 시도하는 데 좋은 현상이다.”

- 한국의 고등교육 발전을 위해 대학 자율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은데.

“20여년 동안 KAIST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리가 만일 국립대였다면 이런 변화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과기부 산하에 있었지만, KAIST 특별법을 통해서 비교적 자율성을 확보했기 때문에 변화·발전이 가능했다. 정부에서 너무 대학을 관리하려고 하다 보니까 망할 대학이 망하지 않고, 잘 될 대학도 안 되는 것이다. 다 똑같이 관리하면 잘하는 대학이 나오지 않는다.”

<대담 : 심준형 사장, 정리 : 신하영 기자, 사진 :한명섭 기자>

신하영 기자 (press75@unn.net) | 입력 : 08-10-17 오후 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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