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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WCU사업’ 방향은 과연 옳은가
이덕환 서강대 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세계 수준’ 상관없이 지원금 따기 경쟁
외국대학 베끼기·형식주의 지양해야
우리 대학들이 세계적 대학을 만들겠다고 외국인 교수 모셔오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정말 필요해서가 아니다.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내는 것이 목적이다. 물론 그렇게 해서 세계적 대학이 만들어질 수 없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대학의 심각한 도덕적 해이가 합쳐져서 벌어지고 있는 정말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다.

세계적 수준의 대학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대학이 자발적인 노력에 의해 그렇게 발전하면 더 없이 좋겠지만 우리 사회가 그 정도의 인내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모양이다. 결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서 억지로라도 세계적 대학을 만들어야 할 형편이다. 우리 사회의 요구가 그만큼 강렬하다는 뜻이다.

실제로 정부가 많은 노력을 했다. 10년 전에 시작했던 BK(두뇌한국)사업이 그 시작이었다. 2005년까지 1단계로 1조3000억을 쏟아 부었고, 2012년까지 2단계로 2조를 더 투입할 예정이다. 인문사회계를 위한 HK(인문한국)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5년 동안 8000억을 투자하는 WCU(세계 수준의 연구중시대학)사업을 시작했다.

그런 노력에서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공계의 논문 편수가 크게 늘어났고, 인문사회계의 연구 활동도 활발해졌다. 대학의 국제화도 상당한 수준으로 진행되었다. 이제 대학의 실험실에서 외국인 학생을 만나는 것은 조금도 놀랄 일이 아니다. 교수와 대학원 학생의 해외 여행도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세계적 대학이 등장할 가능성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오히려 그런 노력으로 우리가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훨씬 더 많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더 크다. 맹목적으로 세계적 대학에 집착하는 바람에 정작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잃어버렸다. 과연 우리가 정말 원하는 진짜 세계적 대학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찾아볼 수 없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우리 노력의 목표는 외국 언론사의 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었다. BK사업에서 정량화된 연구 실적을 강조하고, WCU사업에서 외국인 교수의 수를 늘이려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외국 언론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만 하면 진짜 세계적 대학이 되는 것인지, 그리고 그런 대학이 정말 우리가 원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확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대학의 국제화부터가 그렇다. 처음부터 국제화 수준이 높아서 세계적 대학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세계적 대학이기 때문에 여러 나라의 인재들이 몰려들어서 국제화가 된 것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물론 답은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우리는 국제화가 되어야만 세계적 대학이 되는 것으로 굳게 믿고 있다.

우리 대학이 세계적 대학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정말 심각한 문제가 있다. 우리 대학의 윤리 수준이다. 연구 논문과 관련된 잡음이 끊이지 않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데 무작정 논문 수가 많은 교수를 영입해서 정부 지원에 무임승차하려는 기막힌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 대학에서 교육이 사라지고 있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온갖 평가에서 교육보다 연구를 지나치게 강조한 결과다. 이공계에서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연구도 교육의 일부라는 핑계로 석사와 박사 과정에서 ‘연구학점’의 비중을 마구 늘이고 있다.

과연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세계적 대학이 어떤 대학인지를 명확히 밝히려는 노력이 먼저 필요하다. 단순히 국제화 수준이 높다고 세계적 대학이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미국의 대학을 흉내낸다고 될 일도 아니다. 남이 장에 간다고 무작정 우리도 거름을 지고 따라 갈 수는 없다.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고, 우리 사회의 품격을 높여줄 수 있는 학문적 성과를 낼 수 있는 대학을 만들어야 한다. 단순히 외국을 벤치마킹해서 될 일이 아니다. 우리 대학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정부의 잘못된 평가와 지원 정책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대학의 윤리 수준을 높이려는 적극적인 노력도 절실하다. 남이 아니라 우리가 인정하는 세계적 대학을 만들어야 한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한국대학신문 | 입력 : 08-12-29 오전 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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