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대학의 특징을 하나 꼽으라면 필자는 단연코 연구실 중심의 교육제도와 ‘ゼミ(제미·교수 지도 아래 소수의 학생이 모여 연구하며 발표·토의 등을 하는 일)'라고 일컬어지는 연구실 세미나를 기반으로 진행되는 학부 졸업논문 작성이라고 하겠다.
물론 졸업논문이 필수가 아닌 대학도 있고 전공학과가 문과·이과로 구분돼 제미의 운영형태도 다양하지만 졸업 후에 모교 방문, 동창·동기 모임 등의 각종 행사가 열릴 때, 행동단위나 그 결속력의 구심점은 항상 연구실이다. 그리고 연구실 활동의 핵심은 졸업논문 작성에 있다. 사립대의 경우 교수 한 명이 특정 연구분야의 연구실을 개설하고 그 연구실은 교수 이름을 따서 “ㅇㅇ硏(켄)”이라고 통칭된다. 학생들은 자기소개를 할 때 ㅇㅇ대학 ㅇㅇ학부 ㅇㅇ硏(켄) 소속·출신이라고 말한다. 필자는 지면을 빌려 와세다대 이공학부 오오노켄에서의 경험을 짧게나마 소개하고자 한다.
일본 대학 연구실의 구조는 도제식의 피라미드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즉, 교수 한 명을 중심으로 도쿠타 제미(박사과정 제미), 마스타 제미(석사과정 제미), 소츠론 제미(학부졸업논문 제미), 기소 제미(3학년 대상 기초 제미)로 구성돼 있다.
기소 제미는 학부 수업의 심화과정이면서 연구실 특유의 연구방법론을 맛보게 되는 세미나 형태의 수업이다. 주 1회 2시간 정도의 윤번제로 진행되며 주로 석사과정 1년차가 중심이 돼 리드해 나간다. 대체로 석·박사과정도 참가하며 지도교수는 간혹 참가해 논평을 한다. 소츠론 제미는 연구실 멤버 전원이 참석하는데 3학년도 참석시켜 제미라는 것을 체득하게 하고 졸업논문 쓰는 법을 조금씩 이해하게 한다. 마스타 제미는 주 1회 90분 정도 진행되며 석사 2년차 2명 정도가 윤번으로 발표하고 석·박사과정 및 지도교수의 조언으로 진행된다. 도쿠타 제미는 월1~2회 1회당 90분 정도로 1~2명이 윤번으로 발표하고 박사과정 및 지도교수의 질의응답으로 진행된다. 그 외에 일종의 스터디그룹인 자생적 성격의 서브 제미가 있다.
이처럼 일본 대학의 연구실은 철저하게 구조화돼 있고 서로의 역할 분담이 잘 돼 있다. 발표자는 발표하고 답변하면서 자신의 논리를 재구성하게 되고 지도자는 가르치면서 이해의 심도를 더해 가는 특징을 띠고 있다. 이런 구조로 인해 교수 1명이 적어도 10명의 학부 졸업논문과 10명의 석사학위논문을 지도해 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연구실이 수주한 프로젝트도 교수, 석·박사과정, 학부생이 각기 역할분담을 해 추진한다.
수없이 반복되는 발표, 논문의 완성도와 심도를 더하고 팀워크를 다지기 위한 합숙 제미 2~3회, 중간체크 과정들을 다같이 무사히 통과하기 위해서 행해지는 연이은 철야작업과 협동작업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피눈물 나는 공부와 수많은 토론을 거쳐 완성된 논문들은 소속 분과별로 교수들 앞에서 2일간에 걸친 최종발표로 이어진다. 최종발표 후 졸업 가능 여부가 판가름 난다.
졸업논문 결과가 발표되는 날 연구실에서는 그동안 누구로부터 희사되었는지 기억을 원치 않는 모든 알코올류와 먹을거리들을 다 내 놓고 파티를 벌이면서 그동안의 에피소드로 밤을 새워 자축한다. 만약에 결과가 좋지 않은 동료가 있으면 위로하거나 원인분석도 하고 서로 걱정하며 앞으로의 대책을 강구하기도 한다. 추가발표라는 일말의 희망에 매달리기도 하고 자신의 모자람을 인정하면서 1년 더 노력하겠노라고 울부짖기도 한다.
필자가 소속된 연구실은 나름대로의 자부심이 너무 강해서 학과가 요구하는 졸업조건 이외에도 연구실 졸업조건이 몇 가지 더 추가돼 있다. 연구실이 인정하는 학회에서 자신의 졸업논문을 발표할 것, 일정 수준의 영어성적을 통과할 것, 부기 자격증을 취득할 것 등이었다(최근 영어성적과 부기 자격증 요구는 철회되었다).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연구실 OB로 인정치 않겠다는 일종의 엄포인 셈이다. 졸업 당해연도의 추계학회에서 발표하지 못한 경우에는 이미 취직한 졸업생인 데도 불구하고 이듬해 춘계학회에서 발표를 해야지만 연구실 OB로 대접해 준다. 아직까지 이러한 연구실 룰이 깨졌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연구실이 발간하는 e-뉴스가 정기적으로 메일로 배달된다).
별것도 아닌 학부 졸업논문으로 호들갑을 떨고 있다고 평가절하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대학을 졸업하면서 자기가 품었던 문제의식이나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의 아이디어를 테마로 논리적으로 정리해서 모델링하고 데이터로 증명해 내는 과정을 한 번이라도 경험하고 졸업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회사에 가서 맡은 일을 얼마나 철두철미하게 잘해낼까 미루어 짐작된다.
와세다대의 이공학부가 올해로 100주년을 맞았다. 100년의 세월을 변함없는 전통으로 지켜져 내려온 학부 졸업논문제도가 2세기를 맞이하고 있다. 색이 바랜 선배들의 졸업논문집들이 오늘도 소속 연구실의 책꽂이 한 곳에 가지런하게 잘 정리된 채 후배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