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수사회가 오히려 더 보수적인 것 같다.”
한 여교수의 말이다. 그는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유리천장’이 튼튼하긴 하지만 엘리트 집단으로 불리는 교수사회는 더하다”면서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한 문제라 풀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회 곳곳에서 여성들의 ‘반란’이 거세지면서 교수사회도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강한 ‘여풍’ 교수사회는 ‘무풍’
사회 곳곳에 여풍이 강하게 불고 있다. 여학생 졸업자 비율이 높아지고, 남자들보다 우월한 능력을 가진 ‘알파걸’·‘골드미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2008년 서울대 신입생 3387명 중 여학생은 40%에 달하는 1345명이었다. 10년 전인 1998년 27%에 비해 약 1.5배 증가한 숫자다. 법조계에서도 여성 바람은 거세다. 2008년 판·검사 임용에서 여성은 모두 102명으로 53.7%나 됐다. 의사 국가면허시험에서도 면허취득자 3887명 중 여성은 33.5%인 1301명이었다. 10년 전인 1997년 18.1%에 비하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그렇지만 교수사회는 여전히 여풍의 ‘무풍지대’다. 교수직과 직결되는 박사 숫자와 남녀 교수 비율을 살펴보면 확연하게 드러난다. 지난 2000년 전체 박사학위 수여자 5290명 중 여성의 비율은 1288명으로 24.35%에 달했다. 이에 반해 남녀 교수 구성비는 전체 4만 1788명 중 여성이 5751명으로 13.75%에 불과했다.
현재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2008년 박사학위 수여자는 모두 9369명이다. 이 중 여자는 29.49%인 2763명으로 크게 늘었다. 그렇지만 5만 4331명의 교수 중 여자는 17.67%인 9603명에 그쳤다. 여성 박사학위 수여자에 비해 여교수 비율은 여전히 10% 이상 차이가 나는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여교수가 절대적으로 적은 단과대학에서는 여교수의 임용 자체가 뉴스거리가 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진다. 고려대 법과대학에서는 지난해 2학기 처음으로 여교수가 임용돼 화제가 됐는데, 1905년 보성전문학교에 법률학 전문과가 생긴 이래 무려 102년 만의 일이었다.
남자교수가 대부분 인사권 가져전공계열 교수 비율에서 여교수의 편중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2008년 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가정계열에서 여교수는 전체 522명 중 475명(91.00%), 예능계열은 3405 중 1161명(34.10%)이다. 반면 사회계열에서 여교수의 숫자는 전체 9421명 중 1125명(11.94%), 공학계열은 1만 1249명 중 고작 376명(3.34%)에 불과했다.
박남희 전국여교수연합회 수석부회장은 이를 두고 “여교수 비율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가정·간호계열을 제외하면 20%가 넘는 곳은 예술계열뿐”이라면서 “공학·이학계열에서 여교수들이 늘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해 보고자 추진됐던 정책이 바로 ‘여교수 채용목표제’다. 절대적으로 낮은 여교수 비율을 법으로 정해 높여 보자는 게 입법 취지다. 지난 2003년 6월 국회에서 입법 통과돼 2003년 하반기 교수 채용부터 시행됐다. 교과부는 여교수 채용 목표제에 따라 “2010년까지 여교수 비율을 20%로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그렇지만 현재 상황으로는 목표달성이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후 여교수의 증가 비율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교수들이 상위직을 장악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런 문제는 개선되기 어려워 보인다. 2만 6769명의 정교수 중 여교수는 3414명(12.75%), 1만 1381명의 부교수 중에서는 1838명(16.15%), 1만 455명의 조교수 중에서는 2431명(23.25%), 5597명의 전임강사 중에는 1909명(34.11%)이었다. 상위직으로 올라갈수록 여교수의 비율이 더 낮아진다는 의미다.
가장 큰 문제는 사회 인식 신혜경 서강대 일본학과 교수는 이를 두고 “여교수가 적은 이유는 여성들의 능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습’ 때문”이라며 “남자들이 리더 역할을 맡도록 하는 사회구조가 문제다. 인재를 받아주는 그릇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설명했다.
박남희 부회장은 이런 현상이 심화될수록 남자교수들의 그릇된 인식이 더욱 견고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 부회장은 “여교수는 가정 일을 빙자해 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심지어 여교수의 임신·출산을 용납지 않는 이도 있고, 여교수 임용과정에서 힘을 발휘하는 남자교수들도 있다”면서 “이런 ‘카르텔’이 하루빨리 깨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 내에서 여교수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특히 교수로 임용되는 연령대가 ‘육아’ 문제와 맞물리는 시점임을 고려, 관련 시설들을 확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소연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는 “가정에서는 물론이고 대학에서도 많이 도와줘야 한다”면서 “여교수·남편·학교가 서로 협력·보완하는 관계부터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교수’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지만 ‘어머니’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는 뜻이다.
“여교수는 들러리가 아니다.” 정경연 전국여교수연합회장 |
 “대학이 여교수에게 인사권을 주지 않는다. 그저 들러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정경연 전국여교수연합회장은 “학장을 비롯해 인사권을 가진 직위에 여교수들이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여성은 군대를 안 가기 때문에 남자들보다 더 빨리 교수가 되지만 육아라는 문제가 걸리면 많은 갈등을 겪게 된다”며 “대학 내 탁아소 설치 확대 등 여교수들을 위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선진국은 육아·탁아시설을 충분히 마련해 여교수들이 실력을 십분 발휘하도록 배려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사정이 좀 다르다. 남자들은 육아에 잘 나서지 않는다. 여교수는 그야말로 ‘고급 인력’ 아닌가. 그런데도 모두 여성에게 미룬다. 이런 일들부터 하루빨리 해결해야 한다.”
그는 이런 구조적인 문제 해결과 함께 여교수들 스스로도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데 그러질 못한다는 이야기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여교수들이 뭉치는 일이 우선이라고 덧붙였다.
“교수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이다. 이런 위치까지 오르려면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이 노력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교수가 되기 전까지 악바리처럼 달려들던 여성들이 막상 교수가 되면 자신만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후배 여교수들이 더 많이 올라올 수 있도록 적극 나서야 한다. 물론 육아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고, 개인 연구도 바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이럴수록 남자 위주의 교수사회에서 멀어지게 된다. 안 그래도 약한 네트워크는 이런 문제들 때문에 점점 약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여교수들이 강하게 뭉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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