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난투극으로 얼룩지다가 겨우 진정됐다. 민생국회를 외면한다는 비판에 정치인들이 겨우 정신을 차린 것이다. 늦게나마 민생을 챙길 채비를 하니 반가운 소식이나 그 후유증은 또 고스란히 국민 몫으로 돌아오고 있다. 교육관계법 심의도 예외가 아니어서 지난 8일 임시국회 폐회 일에 쫓겨 교육관계 법령 심의가 속전속결로 진행되는 것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최근 국립대학에서 가장 관심이 집중됐던 것 중 하나는 ‘국립대학 재정·회계법’(이하 재정회계법) 제정이다. 이 법안은 지난해 10월 10일 입법예고와 11월 21일 국무회의를 거쳐 24일 국회에 제출됐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는 지난 8일 재정회계법을 전체회의에 상정한 후 공청회를 거쳐 법안심사소위에 상정키로 결정했다. 일부 법안들이 공청회 없이 일괄 회부되는 것과 비교하면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국 국·공립대 교수회 연합회(국교련)는 정부가 발의한 재정회계법에 대해 국·공립대학 교수 7176명의 서명을 받아 ‘재정회계법(안)의 폐기·부결에 관한 청원’을 지난해 12월 30일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우리가 이 법안에 대한 반대와 국회 심의에서 폐기 및 부결 청원을 한 것은 정부가 처음 약속했던 내용과는 동떨어진 법안으로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이다.
국립대학은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인 교육의 권리(헌법 제31조)에 기초해 고등교육의 일부를 국가가 책임진다는 의미로 설치·운영되는 교육기관이다. 그럼에도 정부의 재정회계법안은 재정효율성 증대라는 명목 아래 실제로는 국가의 재정 부담을 외면했다. 이는 결국 등록금 인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어 학문의 생산성을 왜곡시키게 된다.
한국의 고등교육예산은 OECD 국가 중 GDP 대비 최하 수준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신자유주의적 경쟁논리에 국립대학을 대입하고 재정지원을 축소함으로써 개별 대학에게 그 부담을 전가시키고 있다. 재정은 대학경쟁력의 기본 전제다. 우리 정부는 이를 외면한 채 마치 국립대학이 무능과 부패에 물들어 경쟁력이 저하된 것처럼 호도해 왔다.
그러한 인식이 바로 재정회계법안에 반영되어 기존의 국가지원에 관한 내용마저 선언적·추상적 문구로 만들어 버렸다. 재정회계법 제4조 1항의 “국가는… 재정지원을 할 수 있다”라는 조항이다. 그것은 정부가 명백히 고등교육을 포기한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율성의 제고도 대학이 아닌 총장의 권한만을 강화시켜 대학을 교육과 연구의 산실이 아닌 효율성을 추구하는 기업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재정위원회 설치와 구성은 총장의 독점적인 재정권을 보장함으로써 대학의 민주적인 재정구조를 저해하고 있다.
이제 공은 국회로 던져졌다. 그동안 우리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의 권익과 국가 고등교육 발전을 위해 정부의 법률 제정에 대해 협조해 왔다. 그 결과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학문의 자유, 대학의 자율은 송두리째 외면당하고 오직 지식생산을 강요당하는 대상으로만 치부되기에 이르렀다.
현재의 정부법안은 대학을 왜곡시키는 악법이다. 국회는 이러한 악법으로부터 대학이 발전할 수 있는 기초를 만들어 주길 기대한다. 7000명이 넘는 국립대학 교수들의 서명과 국회 청원은 처음 있는 일이다. 2년 전 법인화 반대 지식인 선언 때도 2800명 정도였던 것을 감안하면 ‘재정회계법’ 제정 반대서명의 의미는 각별하다. 국립대학 현장에서 직접 교육을 수행하는 교수들과, 서명운동에 동참한 청원인들의 의견이 이번 국회 심의과정에서 충분히 반영될 수 있기를 민의의 중심인 국회의 양식에 기대한다.
이후 국회 공청회도 교과부가 실시한 공청회처럼 재정회계법(안) 추진을 위한 공청회가 아니라 국교련이 제기한 청원 내용을 바탕으로 재정회계법(안) 제정 자체를 원점에서 재논의하는 공청회가 돼야 할 것이다.
이번 재정회계법 심의에서 국회 교과위 소속 의원들은 강남의 귤을 강북에 억지로 옮겨 심어 탱자로 만드는 정부의 우(愚)에 동참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나아가 국회는 소위 ‘국립대학 운영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과 전체 국립대학을 고등교육의 산실로 만드는 ‘국립대학(통합)법’ 제정에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정용하 부산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전국 국·공립대 교수회 연합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