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부터 나라의 모든 정책기조는 효율화, 시장화, 민영화라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이러한 정책의 일환으로 ‘국립대 법인화’가 추진되었고 또 ‘대학자율화’ 정책이 두 번에 걸쳐 발표되었다. 과거의 정부에서 여러 규정을 통해 제한해 오던 교원인사, 학사운영 등 대학 운영에 관한 대부분의 핵심 사안들이 이제 대학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국립대건 사립대건 이제 대학에서 알아서 뽑고, 알아서 받고, 알아서 가르치라는 것이다. 앞으로 정부에서는 크게 간섭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정책들이 발표되자 대학 경영자들은 모두 두 손을 들고 반겼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대학에 몸담고 있는 교수와 직원들은 ‘매우 우려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여기서 교수와 직원들이 갖는 우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인사정책의 변화이다. 인사는 자신들의 급여와 승진 등 생사여탈이 걸려 있는 가장 민감한 문제인데 이제부터 대학의 인사가 자율에 맡겨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일부 사립대학에서는 이를 기다렸다는 듯이 벌써부터 교수들의 급여를 호봉제에서 연봉제로 전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런 움직임이 있는 대학의 구성원들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연봉제로의 전환은 당분간 우리나라 교수사회를 뒤흔들 태풍의 눈으로 예견되고 있다.
연봉제 도입을 주장하는 경영자들은 하나같이 ‘공산주의의 몰락이 가르쳐 주듯이 시장에서 경쟁이 없으면 발전 또한 없다. 따라서 교수들에게 경쟁관계를 도입하여 급여를 차등지급함으로서 연구의 수월성과 대학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논리에 함정은 없을까? 대학에 시장 논리를 적용한다면, 그렇다면 과연 대학이 시장인가? 급여를 걸어 두고 교수들을 서로 경쟁시키면 대학의 경쟁력이 정말로 높아질까?
연봉제는 교수들의 능력을 신장시키는 하나의 도구이다. 그런데 이 연봉제라는 도구를 쓰기 위해서는 교수들의 능력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교수의 능력을 공정하게 평가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사실이다. 기업체 영업사원의 영업실적이나 생산직 근로자의 생산실적과는 달리 교육과 연구에 대한 평가는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그것은 교육이 제품을 생산하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가르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연구에 대한 경쟁을 부추기다 보면 쓰레기같은 논문이나 또 다른 황우석들을 양산하기 쉽다. 평가가 잘 못 될 경우 오히려 경쟁력을 더 약화시킬 소지가 다분하다. 연봉제는 갑과 을의 협상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교수라는 직업은 노동시장 가운데 유연성이 거의 없는 직종 가운데 하나이다. 노동시장에 유연성이 없으니 연봉에 대한 갑과 을의 흥정이 있을 수 없다. 연봉 책정은 경영자의 일방적인 통보 절차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연봉제 도입을 주장하는 대학 경영자들의 표면적인 명분보다는 실제 더 위험한 함정이 감추어져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급여 삭감을 통한 인건비 절감이다. 인건비 절감은 대부분의 경영자들이 쉽게 빠지기 쉬운 유혹이다. 실지로 지금까지 많은 사립대학에서 연봉제라는 이름으로 급여를 삭감하거나 사직을 강압적으로 유도해 오고 있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교수들을 평가한다는 명분으로 구성원들에 대한 감시감독을 한층 강화함으로서 회계부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지로 비리가 많은 대학은 어김없이 연봉제를 실시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한편 연봉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가 ‘교수들의 연구 수월성과 대학 경쟁력 향상’이라는 다분히 추상적인 것임에 비해 잃을 수 있거나 숨어있는 함정은 많기도 하거니와 매우 구체적이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연봉제 시행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보고되고 있다. 연봉제는 대학의 직원들을 비정규직으로 전락시키는 전단계로 이용된다. 연봉제를 통해 구성원들의 평균 급여는 지속적으로 낮아진다. 대학 구성원간의 불신이 팽배해지고 불만이 누적된다. 구성원들의 반발로 인한 내부고발이 빈발하고 교육의 질이 저하되며 결국 대학의 경쟁력이 떨어진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살펴보지 않더라도 이미 주위에서 연봉제를 경험한 교수들은 하나같이 ‘교육과 연구 환경이 더 열악해졌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연봉제를 30년 이상 먼저 실시한 경험을 가진 미국 대학의 예를 보더라도 연봉제는 교수들의 연구능력과 대학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 연봉제를 실시하고 있는 대학은 학문 수준이 낮은 일부 2류대학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등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 연구소에서조차 연봉제의 효과에 대해 부정적인 결론을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기르는 대학에서 단기적인 안목으로 연봉제를 추진한다는 것은 나쁜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봉제라는 위험한 칼이 경영자의 입맛을 당기는 이유는 그 효과가 빠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대학의 경영자들은 교수들의 업적을 평가함으로서 효율적으로 합리적으로 대학을 경영하고 있다고 판단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결과는 경영자들의 바람과는 달리 그 반대로 나타나기 쉽다. 연봉제가 대학의 경쟁력 향상이 아니라 대학에서 경쟁력 있는 우수한 교수들은 사라지게 만들고, 대학을 황폐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은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