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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프롤로그: “자율화 못지않게 대학 본질회복 절실”
신뢰 얻어야 자율화 지지...대학 정체성 회복 요구
교수사회 지성 회복하고 재정운영의 투명성 기해야
대학 자율화 못지않게 대학의 각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나라 대학이 ‘지성인 양성’, ‘학문의 전당’이란 대학의 본질에 과연 얼마나 부합하느냐에 대한 물음이다. 대학은 최고의 지성이 모인 집단이지만 그에 걸맞은 도덕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이에 본지에서는 ‘대학의 정체성과 신뢰를 회복하자’란 주제로 2009년 상반기 시리즈를 12회에 걸쳐 연재한다. 지성의 상징인 교수사회의 개혁과 재단비리·입시문제·재정운영·인성교육 등 대학의 본질을 회복하는 데 짚어야할 의제들을 다룰 예정이다.
<편집자주>

“대학 경쟁력을 제고해야 한다는 말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내용을 보면, 대부분 대학의 순위를 올려야 한다는 데에 집중돼 있다. 우리나라 대학이 현재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고찰은 찾기 힘들다.”

다음 달 30일 임기만료를 앞 둔 이태일 경기대 총장의 말이다. 그는 지난 4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학의 정체성 고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 총장뿐만이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 대학이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지 자문해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교육계 원로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다. 사회가 잘못된 길로 나갈 때 이를 바로 잡아주는 ‘나침반’ 역할을, 과연 대학이 하고 있느냐는 물음이다.

◆대학의 본질 회복 교수가 핵심

교수사회의 변화 없이 대학의 본질 회복을 논하기는 어렵다. 대학의 중심에 교수가 있기 때문이다. 교수가 먼저 바로 서야 대학의 신뢰도 회복될 수 있다.

지난해 3월 대학가엔 새삼 ‘폴리페서(polifessor·정치교수)’논란이 일었다. 18대 총선을 앞두고 현직 교수들의 출마가 잇달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정치권 진출을 준비하는 교수들의 잦은 휴강과 강의 떠넘기기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임명직 고위 공무원으로 진출했던 폴리페서들도 인사검증과정에서 논문표절·부동산투기 등의 의혹이 불거져 줄줄이 낙마했다. 2학기가 개강하자 이들은 태연히 학교로 복귀했다. 학생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학생들은 제기된 의혹의 해명을 요구하는 동시에 수업권을 침해받았다는 이유로 교수의 정치 참여를 제한하자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사립대 총장을 지낸 한 교수는 “인사검증 과정에서 드러난 의혹에 대해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것이나 교수의 본분인 연구와 교육을 무시하고 권력의 양지만을 좇는 행태 또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교수들의 권력 지향성은 종종 대학 내에서 충돌한다. 총장직을 둘러싼 내부 다툼이다. 총장후보에서 물러나라고 요구하며 상대후보를 협박하는 경우도 있다. 총장직을 둘러싼 갈등이 종종 논문표절 공방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총장선출을 둘러싼 파벌갈등은 대학을 망치는 걸림돌로 지적된다. 한 원로교수는 “총장선거를 앞두고 교수들이 줄을 서고, 총장이 되면 자기 사람들로 보직을 채운다”며 “교수들의 권력지향성이 대학의 인사와 경영까지 망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입시에 민감한 사회, 신뢰가 관건

대학 자율화의 핵심은 입학 자율화다. 대학이 원하는 인재를 뽑을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요구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그러나 교육당국은 고등학교와 중학교는 물론, 초등학교의 교과과정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입시문제를 관리해 왔다.

2008년은 ‘대입 자율화 원년’이었다. 대학입시 업무가 대교협으로 처음 이관됐다. 현 정부도 대학입시 자율화 계획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어느 시점에 완전자율화 시키느냐가 관건이다. 교육당국은 이를 ‘사회적 합의를 거치고 난 후’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선 대학이 사회적 신뢰를 회복해야 대입 자율화가 현실화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공정성과 투명성이 생명인 입시를 대학에 온전히 맡겨도 국민이 안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최근 고려대 입시 논란을 보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대입에 민감한 사회인지 알 수 있다. 입시부정이 끊이지 않는다면 대입 자율화에 대한 지지를 받아내기 어렵다. 최근에도 몇몇 대학의 예체능 입시에서 부정사례가 발견됐다. 서울의 한 사립대 입학처장은 “공정한 입시관리만이 대입자율화를 얻어낼 수 있는 관건”이라며 “학생선발도 성적순으로만 뽑는 게 아니라 잠재력을 갖춘 학생을 뽑아야 사회적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예·결산의 투명성도 신뢰 요소

해마다 큰 폭의 인상률을 기록하는 등록금 문제로 대학가는 홍역을 치른다. 올해는 많은 대학이 등록금을 동결해 상대적으로 조용히 넘어갈 것으로 예상되지만, 내년 초에는 곳곳에서 어김없이 등록금 투쟁이 일어날 것이다.

대학 등록금은 연간 1000만원을 향해 오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비싼’ 등록금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관련 정보공개를 청구하는 학생회도 늘고 있다. 학생들은 학교가 매년 적립금을 쌓으면서 등록금을 계속 올린다고 불만이다. 정태호 고려대 학생회장은 “학우들 대부분이 등록금이 비싸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 사용내역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한다”며 “그러나 마땅한 방법이 없어서 학교측에 등록금 정보공개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학생들이 본분을 잊고 경영에 관여하려 한다”는 부정적 시각과, “장기적으로는 공개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긍정의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대학 간 경쟁이 치열해 질수록 ‘수요자 중심’의 가치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교육 소비자인 ‘수요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선 예·결산의 투명성이 요구된다.

아직까지 예·결산을 부풀리는 관행은 여전하다. 지난해 말 한국대학교육연구소(소장 박거용)가 ‘등록금넷’의 요청을 받아 2007년 대학 예·결산을 분석한 결과, 대학들은 모두 1조7174억원의 차액을 남긴 것으로 드러났다. 예·결산에서 수입은 축소하고, 지출은 부풀리는 방식으로 거액을 남긴 것이다.

분석대상은 편제정원 1만명 이상의 수도권 사립대 19곳이었다. 이들 대학의 수입축소 편성 금액은 7531억원, 지출을 뻥튀기 해 편성한 금액은 9643억원이었다. 총 1조 7174억원의 예·결산 차액을 남긴 셈이다. 이는 이들 대학의 2007년 등록금 수입 8조5295억원의 20.1%에 해당하는 규모다. 합리적 예산 편성이 이뤄졌다면 전년도 등록금 수입의 20.1% 감축이 가능했을 것이다.

◆기업도 인성 갖춘 인재 원한다

교수사회 뿐만이 아니라 직원·학생·동문 사회도 변해야 한다. 서울의 한 사립대 노조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애를 먹고 있다. 정규직에 지원되는 유아교육비를 줄여 정규직 전환 인원을 늘리려 했지만, 직원들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대학 노조관계자는 “젊은 직원들이 미취학 아동의 교육비 50%를 보전해주는 유아교육비를 양보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총학생회가 각종 이권에 개입하면서 학생회장이 접대를 받거나 돈을 챙겨 문제가 생기는 일이 종종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7월 강원도 삼척의 모대학 전·현직 총학생회장 A씨와 B씨는 졸업앨범 제작과 관련해 특정업체로부터 거액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모사진관 대표로부터 “대학 졸업앨범을 우리 사진관에서 제작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2500만원을 받았다. 강릉지방경찰청은 2006년에도 졸업앨범 제작업자로부터 1억2800만원 상당의 금품을 챙긴 혐의로 이 지역 2개 대학의 전·현직 총학생회장 4명을 적발했다.

대학이 기능인만 양성하지 말고, 인성을 갖춘 인재를 키워달라는 요구도 나온다. 특히 팀워크와 정직, 성실성을 요구하는 기업의 CEO들이 많다. 한독약품 김영진 회장은 “성취·파트너십·혁신·정직성·신뢰를 갖춘 인재를 원한다”고 밝혔고, 민계식 현대중공업 부회장은 “학벌보다는 회사를 위해 공헌할 수 있는 인재를 원한다”고 말했다. 전문성도 중요하지만, 인성이 먼저 기본이 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사립대의 재정확충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지만, 대학이 너무 돈벌이에 집착한다는 지적도 있다. 대학의 최고위과정과 평생교육원, 특수대학원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특히 대학입시에서도 특목고나 강남지역 고교를 선호하는 이유를 대학의 ‘돈벌이’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사학재단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할 과제다. 사학을 둘러싼 가족간 갈등으로 학생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현재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재단 이사장이 전횡을 휘두르며 비리와 부정을 저지르고, 그 때문에 물러난 뒤에도 복귀를 시도하고 있다. 대학을 ‘사유물’로만 봐선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건전한 사학재단이 자율성을 갖고 대학을 경영하기 위해서라도 비리 재단의 퇴출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신하영 기자 (press75@unn.net) | 입력 : 09-03-02 오전 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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