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겁게 임기를 시작하는 마음이다.” 지난 26일 취임식을 가진 장백기 전국대학노동조합(이하 대학노조) 신임 위원장은 취임 소감을 이같이 밝혔다. 현재 대학노조가 처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위원장에 출마하기까지는 ‘결단의 시간’이 필요했다는 얘기다.
“세계적인 경제위기에서 대학 내 정규직의 고용안정에도 신경쓰면서 비정규직 양산도 저지해야 한다. 입학자원 감소로 도산하는 대학에 대해서도 대안을 내놔야 한다. 등록금 문제와 대학의 재정압박 문제에 대해서도 대처해야 하기 때문에 현 정부와 피할 수 없는 대결도 있다. 무겁게 임기를 시작하는 마음이다.”
대학노조는 전임 금기송 위원장의 임기가 종료된 지난해 8월부터 위원장이 공석이었다. 산적한 대학 노동계 현안을 돌파하겠다는 위원장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몇 년 새 대학노조의 영향력은 줄어들었다. 민주노총 산하의 대학노조는 140개 대학 9000여명의 조합원을 가진 최대 대학노조지만, 최근에 탈퇴하는 지부(대학)가 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반면 한국노총 산하인 사립대노동조합연맹(이하 사립대노조연맹)은 세를 불려가고 있다. 지난 2004년 11개 대학으로 출범해 5년만에 17개 대학 4000명의 조합원을 가진 조직으로 성장했다. 한쪽에선 이를 두고 ‘대학 노동조합의 이기주의화’를 우려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선 ‘노조가 조합원 이익을 중시하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개편되는 현상’이라 본다.
이런 상황에서 장백기 위원장이 ‘총대’를 맸다. 오히려 사회적 약자 편에 서서 산별노조의 ‘정체성’을 찾겠다는 포부까지 밝힌다. 그것이 대학노조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란 얘기다.
“노조가 사회적인 약자 편에 서지 않으면 외면 받게 된다. 대학노조가 살길은 노조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비정규직을 받아들이고, 용역 노동자들의 투쟁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학생 등록금을 올려야 인건비를 올릴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등록금 문제를 학생과 나눠야 사회적 신뢰도 얻을 수 있다.”
장 위원장은 우선 △대학직원의 전문성 강화 △대학 내 차별 금지 △비정규직 문제해결 등에 주력할 예정이다. 거시적으로는 교수노조,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비정규직 교수노조 등과 연대해‘산별교육노조’로 가야한다고 주장한다.
“교육행정대학원을 갖춘 대학과 연계해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하겠다. 대학직원의 전문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석·박사 직원을 양성해 대학행정의 실질적 주체로 서야 대학을 변화시킬 수 있다. 현재 기능직의 경우 6급 이상은 승진하지 못하는데 이러한 차별구조도 해소해야 한다. 특히 같은 직장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고용불안과 차별을 느끼는 비정규직이 더 이상 양상되는 것을 막고, 한명이라도 더 정규직화 하려고 노력하겠다. 비정규직을 조합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조직화를 도우면서 투쟁도 함께하겠다.”
일각에선 산별노조가 다른 단위노조의 파업에도 동참해야 하고, 사회·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야 하기 때문에 ‘비생산적’이란 지적을 제기한다. 이에 대해 장 위원장은 “사회보장 확충하기 위해선 단위노조가 아닌 산별노조가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등록금 문제를 풀기 위해 산별노조가 나서 대학 적립금의 10~20%를 장학금으로 풀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사회적인 문제는 개별노조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전교조와 교수노조, 비정규직 교수노조 등을 묶어 교육산별노조로 가야한다. 초·중·고교와 대학 교육노동자들이 경쟁만을 부추기는 현 정부의 교육정책에 맞서, 교육의 공공성을 확보하고 사교육비 문제 완화와 무상교육 확대 등을 실현하기 위해선 교육산별노조가 불가피 하다.”
장 위원장은 대학 노동계에선 이름난 활동가다. 경희대 노조 위원장으로 활동하던 1989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과 해고를 당했다. 당시 학생과에 근무하던 장 위원장은 군사독재 하에서 정보기관의 학원사찰을 도운 데에 대해 양심선언 한 것이 빌미가 됐다. 노무현 정부당시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로부터 명예회복을 이뤘지만 복직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다 조인원 경희대 총장이 취임한 뒤 그의 복직이 받아들여졌다.
“당시 대학 학생과는 운동권 학생과 양심 있는 교수들의 동향을 보고하는 독재정권의 하수인 역할을 했다. 결국 89년에 이를 양심선언하면서 학생 신상카드 등을 불태웠는데 이것이 빌미가 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고, 학교에서도 해고됐다. 결국 17년간의 해직생활 끝에 지난해 복직할 수 있었다. ‘세계평화’와 NGO 활동을 중시하는 경희대 학풍과 이를 감안해 복직을 승인해 준 조인원 총장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