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학의 자료는 어디서 볼 수 있습니까?"
모 대학에 재직 중인 한 교수에게서 받은 질문이다. 이 교수는 지난해 9월 당시 본지가 게재한 '한국사학진흥재단 2006년 사립대 경영분석평가' 기사를 보고 자신이 재직하고 있는 대학은 경영이 건전한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기사에는 해당 대학명이 거론돼 있지 않았다. 이 교수가 소속된 대학은 당시 해당연도의 결산자료가 한국사학진흥재단에 제출되지 않아 분석대상에서 제외됐다.
● 정보공시제 ... 오류는 찾아도 부정은 못 찾는다
지난해 말부터 시행된 정보공시제를 통해 대학알리미(www.academyinfo.go.kr)에서 각 대학의 정보를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여기에는 각 대학의 학생현황, 교수 및 직원 현황부터 충원율, 장학금 지급률, 등록금, 예·결산 정보까지 총망라돼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 같은 자료들이 얼마만큼 신뢰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정보공시제와 대학알리미를 관할하는 한국교육개발원 대학정보공시센터에서는 공시내용에 대한 오류 등을 점검하는 시스템을 나름대로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센터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해당 대학이 제출한 자료를 신뢰하는 입장"이라며 "대학정보를 공시하는 것이지 감사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해당 부서 담당자가 작성하고 팀의 상급자가 이를 확인한 후 다시 해당 대학의 정보공시 총괄자가 이를 재확인하는 절차를 거친다는 것이 이 센터가 대학이 기재한 자료를 신뢰하는 이유다.
다른 관계자에 따르면 그러나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로 정기·비정기 실사를 나가 보면 대학당 적어도 몇 가지씩 오류가 발견되고 있다. 시정 변경 명령을 내리고 2주가량의 기한을 주면 대부분 오류를 수정하고 있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여러 제출 자료에서 수치나 금액이 상이한 경우에나 대조작업을 통해 오류를 발견할 수 있을 뿐 제출된 자료에서 모두 동일하게 조작되면 사실상 확인하기 곤란하다는 점도 인정했다.
● 공시는 해도 찾기는 '힘들게', 찾을 수는 있어도 보기는 '어렵게' 대학은 예·결산공시를 인터넷 홈페이지 첫 화면에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해놓게 돼 있지만 이른바 주요 대학들의 경우도 미로 속에 숨겨 놓는 예가 드물지 않다.
E대학은 해당 대학 홈페이지 대학소개 화면에서 대학현황 페이지로 들어가 가장 눈길이 덜 가는 맨 마지막 기타현황 면으로 넘어간 뒤 아래로 훑어 내려와야 최하단에 공시돼 있는 예·결산자료를 확인할 수 있다.
D대학은 대학기관 소개 페이지에서 별도로 기획처 예산팀 홈페이지로 찾아 들어간 후 다시 공지사항으로 페이지를 옮겨야 여러 공지사항 중에 숨어 있는 예·결산공고를 찾을 수 있다.
S대학의 경우도 꽁꽁 숨겨놓기는 마찬가지. 한술 더떠 단 1년만의 자료를 공시해 놓았다. 그 전의 자료를 보기 위해서는 대학 해당 팀에 연락해 이유를 설명하고 신분을 밝혀야 한다. 대학이 거부하면 방법은 없다. 공시의무기간이 1년이기 때문이라는 게 이 대학 해당 팀의 설명이다.
또한 감사보고서의 경우 겉표지 한 장만을 올려놓는 사례가 적지 않다. 회계감사를 실시한 회계사들에게 감사보고서를 요청해도 해당 대학에 문의하라는 답변만이 돌아온다.
공인회계사 출신인 모 대학 회계학과 교수는 대학이 비영리기관인 만큼 보다 더 투명한 재정공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A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김모 교수는 "영리기관인 기업도 자본시장통합법에 의해 상장기업은 금융감독원에 모든 자료를 공시할 의무가 있고 누구라도 그 자료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하물며 비영리기관인 대학이 자료 공시를 형식에 그치고 감사보고서에 접근조차 막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회계감사를 실시하는 회계사들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며 “실질적으로 건전성을 파악하고 투명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대부분이 '문제없이 그럴 듯해 보이는지'를 확인하는 수준인 현재 감사제도는 곤란하다”고 꼬집었다.
사실 공인회계사들이 감사를 하더라도 고수입을 보장하는 기업감사를 제쳐두고 낮은 보수의 비영리기관 감사에 힘을 쏟을 리 없다는 것이다.
교육당국도 무심하기는 마찬가지다. 교과부에 감사보고서를 요청해도 쉽게 얻을 수 없다. 굳이 신분은 물론 요청 이유에 대해 캐묻는 것이 공개를 꺼려하는 대학당국이나 재단과 모양새가 같다.
대학 교수들도 교수협의회에 소속돼 관련 자료를 살펴봐야 하는 위치가 아니라면 굳이 관심을 가지는 일은 거의 없다. 회계학을 전공하는 교수들 대부분도 다르지 않다.
<그림> 한국사학진흥재단 사립대재정회계시스템 ※ 상기 대학은 본 기사와 무관합니다.
● 형식적 공개에도 교육당국 '나몰라라'
한국사학진흥재단에서 대학의 재정·경영정보에 대해 분석하고 사립대학회계정보시스템 등을 통해 공개하고는 있으나 여기에도 한계는 있다.
다양한 시각의 자료 분석을 통해 적지 않은 문제를 발견해 내지만 사실상 일부 정보는 공개가 곤란하다. 법적으로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민감한 부정적 사안을 공개하기에는 부담이 적지 않은 까닭이다. 일부러 대학들의 심기를 건드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대학연구소 황희란 연구원은 "현재 공개된 자료는 형식적인 수준에 그쳐 그간 문제가 됐던 대학의 재정 불투명성을 전혀 해소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부정비리가 드러난 사학에 대해 해당 연도의 재무재표를 살펴봐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회계부정이 자행되더라도 지금의 재정공개 자료로는 파악이 어렵다는 것인데 결과적으로 재정공개가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의미다. 본래 공개가 법제화된 것은 회계부정을 근절하기 위한 목적이지만 공공연히 자행되는 부정에도 불구하고 재무재표상으로는 매우 건전하다.
더구나 교비나 법인회계 공개는 형식적으로나마 이뤄지고 있지만 수익사업이나 산학협력단 등은 ‘사각지대’라는 것이 황 연구원의 설명이다.
대학당국이나 재단은 공개를 꺼리고 있고 정부당국도 이를 문제로 보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투명한 재정·회계, 방법은 없나대학들은 현재 예·결산에 대해 공개가 의무화돼 있다. 공개 기한은 예산의 경우 매 회계연도 5일 전까지, 결산은 매 회계연도 종료 후 3월 이내이며 공개 범위도 예산은 예산총칙 및 산출근거, 부속명세서를 포함한 자금예산서를, 결산은 부속명세서를 포함한 자금계산서 및 합계잔액시산표, 감사보고서를 모두 공개해야 한다.
그럼에도 부실한 자료를 제출하고 공개하는 형식적인 수준에서 대학들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박거용 한국대학교육연구소장은 "현재 운영 중인 대학 예·결산 공개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박 소장은 "예·결산서 부속명세서 공개를 철저히 하고, 세부 항목에 대한 산출근거를 명확하게 명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결산서 서식을 개정해 일정 지출액 이상은 반드시 산출근거를 제시토록 함으로써 예산서와 세부적인 비교가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9월 한국대학교육연구소는 서울·수도권 소재 1만명 이상 규모의 사립대를 대상으로 2006년 예·결산자료를 분석한 결과 수입은 실제 들어올 것 보다 축소 편성하고 지출은 실제 사용할 비용보다 많이 편성하는 방식으로 당해년 1년간 1조 2156억원이 뻥튀기·축소 편성됐다고 밝혔다. 또 과도하게 지출항목을 잡아 전년 대비 예산 관리운영비가 21.9%, 자산적 지출이 20.8% 증가했고 대학이 법인전입금 1013억원, 특정기금인출 1389억원 등 총 2402억원의 지출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한국사학진흥재단이 발표한 '사립대학 재무비율 분석'에 따르면 2006년 전체 교비회계 자금계산서 분석결과 예·결산 차이는 6.6%로 기준치 5%를 상회했고 세부적으로 수입은 미사용전기이월자금의 경우 예·결산 차이가 36.6%, 자산부채수입의 경우 20.0%로 매우 컸다. 지출에서는 더욱 심각해 미사용전기이월자금이 317.5%의 차이를 보였다. 기준치 5%가 무색해졌다.
현재 내놓고 있는 자료만으로도 이처럼 하나 둘씩 문제가 불거져 나오고 있어 대학들이 세부사항 공개를 꺼리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는 의혹이 가시지 않고 있다. 공개제도 개선은 이 같은 의혹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라도 더욱 필요하다.
교과부가 사학기관재무회계규칙을 개정해 사립대가 적립금 50% 한도에서 증권거래법에 따른 증권 취득이 가능토록 하는 등 적립금 운용방식을 완화시켜주면서 대학은 운용내역과 사용내역을 정기적으로 공개해야 할 의무도 생겼다.
자율화 시대에 대학 발목 잡는다는 인상을 주기는 모두가 꺼려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그보다는 건전한 사학을 키워내는 일이 우선이다. 투명한 재정을 위해 모든 경영분석 자료에 대한 세부 공개를 의무화하고 실효성을 갖출 수 있도록 우선 국회 교과위에서라도 발벗고 나서야 한다는 게 대학가와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